철강과 자동차·조선업계가 올해 상반기 철강재 가격 협상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공급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생산 차질에 강판 가격 상승까지 더해질 경우 자동차 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간만에 수주 랠리를 맞은 조선업계도 후판(선박에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을 올리려는 철강업계를 향해 '남는 게 없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18일 철강·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등 철강업체와 현대차·기아는 현재 올해 상반기 자동차 강판 납품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이다.
자동차 강판가 협상은 매년 상·하반기에 실시된다. 강판 수요가 가장 많은 현대차·기아의 납품가격이 정해지면 나머지 업체는 규모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철강업계는 현대차와 기아에 작년 하반기와 비교해 t(톤)당 15만∼20만원 높은 가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강판은 철광석 가격 급등 여파로 작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가격이 오른 바 있다. 4년 만의 인상이었다.
자동차는 강판가는 현재 작년 초 대비 t당 15만원 가량이 올라 115만∼125만원을 기록 중이다.
자동차업계는 철강업계의 이번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강판가는 t당 130만∼145만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700만t의 자동차 강판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1조원이 넘는 금액이 수익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판 가격 상승이 결국 자동찻값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률이 5%대인 것을 고려하면 강판가가 오르면 수익 유지를 위해 자동차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 업체들과 상반기 후판 가격을 협상 중이다.
지난해 후판가는 상반기와 하반기에 t당 각각 10만원, 40만원이 올라 현재 110만원 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급격한 후판 가격 상승 여파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조선해양도 현대중공업[329180]의 통상임금 판결과 후판값 상승을 충당금으로 반영하면서 적자를 냈다.
조선업계는 올해는 더 이상의 인상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조선업계가 '슈퍼 사이클' 도래로 지난해부터 호황에 들어섰지만,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후판 가격 인상은 조선업체의 실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업체들은 주로 헤비테일 계약(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의 계약)을 맺는 만큼 수주가 실적에 반영되기까진 1∼2년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시작된 수주랠리 성과가 올해 말부터 반영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후판가가 철강업체의 요구대로 인상될 경우 조선업체들의 흑자 전환 시기는 더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당시의 후판 가격을 기준으로 수주액을 책정했는데 선박 건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격이 오르면 수익성은 당연히 타격을 받는다"면서 "조선업체들이 수주로 올린 수익을 철강업계가 다 가져가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철강업계는 원료인 철광석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과 글로벌 철강 시황 호조세 등을 반영해 공급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가격은 지난 14일 t당 152.80달러로 연초 대비 29.90달러(24.3%) 올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사들도 원가 인상분을 반영하지 못하면 부담이 큰 만큼 가격 현실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철광석뿐 아니라 석탄 등 주요 원자잿값이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