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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15∼20일' 청와대서 무슨일이…계속되는 '진실게임'

2007년 1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논쟁을 둘러싸고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한의 의견을 물었다고 기술하면서 정치권에는 거대한 파문이 불어닥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참여정부 외교·안보 관련 인사들은 송 전 장관의 주장을 대부분 부인하고 나서면서 이 논란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번 파문의 핵심 쟁점과 관련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말이 엇갈리는 부분을 정리했다.

◇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했나, 북한에 결정하고 통보했나?

이번 논란의 가장 핵심은 참여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찬반 또는 기권 여부를 놓고 북한과 사전에 상의했는지 여부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18일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는 자신과 기권을 지지하는 다른 참석자들 사이에 논쟁이 진행되던 와중에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고,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이 남북 경로를 통해 북한 입장을 확인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참여정부 외교·안보인사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재정 전 장관은 "2007년 대북인권결의안과 관련한 3차례 회의에서 '북한에 의견을 들어보자'는 발언은 결코 없었다"고 말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북한에 사전의견을 구하자고 했다는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을 전면 부인했다.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도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여정부 연설기획비서관 출신으로 문 전 대표 대변인격인 김경수 의원은 "북에 물어보고 결정할 이유도 없었고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일축하며 "15일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기권하기로 결정한 사항에 대해 당시 남북정상회담 직후 다양한 대화가 이뤄지던 시점에 기권 입장을 북에 통보하기로 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측의 반박에도 송 전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진실은 어디 가지 않는다. 기록에 의해 책을 정리했고 제 입장은 책에 다 담겨 있다"며 자신의 입장을 거듭 재확인하고 있는 상태다.

◇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한 시점은…11월16일? 20일?

이처럼 당사자들의 말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사전상의 여부를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당시 청와대가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을 내린 시기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11월 20일 북한의 입장을 백종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의 11월 21일 브리핑에도 "어제(20일) 저녁 늦게 대통령께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으로부터 유엔 대북결의안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상황과 기권방안에 대한 우선적인 검토 의견을 보고받고, 이를 수용했으며 정부 방침이 결정됐다"고 돼 있어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과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문 전 대표 측 참여정부 인사들은 유엔 인권결의안 기권 입장이 16일 노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이미 결정돼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경수 의원은 "16일에 결정이 됐지만, 외교부 장관이 편지도 올리면서 계속 주장을 하니 입장을 발표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며 "20일 저녁에 북한 반응 등을 종합해 다시 보고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유엔 인권결의안 기권 입장을 18일 안보관계장관회의 후 대북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재정 전 장관도 "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북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는 의견을 내면서 논의가 시작됐다"며 "이날 이미 '기권'이 다수의견으로 결론이 내려져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는 당시 청와대 브리핑 내용과 관련, 기자들에게 "16일 회의서 기권을 결정했지만 송 장관의 지속적인 결의안 찬성 주장으로 21일에 최종 발표된 것"이라고 말했다.

◇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찬성이었나 기권이었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의 찬반 입장은 다른 인사와 본인의 기억이 엇갈리고 있다.

주위 인물들은 문재인 전 대표가 애초(15일 첫 안보정책조정회의)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폈다가 다수 의원이 기권으로 흐르자 기권 입장을 수용했다고 전하고 있다.

김경수 의원은 "첫 회의에서 문 전 대표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기억하고 있으며, 당시 정책보좌관이었던 홍익표 의원이 이를 전해 듣고 몇 년 전 TV 토론회에서 그 얘기를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이 당초에는 결의안에 대해 찬성 입장이었다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증언에 대해 "솔직히 그 사실조차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했다.

◇ 송민순 건네받은 쪽지, 북한이 통보한 입장인가

송 전 장관은 11월 20일 백종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으로부터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길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는 북한의 입장을 노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쪽지로 전달받았다고 했다.

이 쪽지가 우리의 질의에 북한이 보내온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종천 실장은 "청와대 참모진으로부터 받은 팩스 문서를 건네준 것으로 국가정보원의 대북 동향 보고였다"라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이재정 전 장관도 라디오에서 "북한 편지가 아니라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사업을 담당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서로 연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