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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 진로를 걱정하시나?.. 요즘 '신의 직장' 트렌드

신의 직장 찾아 헤메는 구직자들
신의 직장 찾아 헤메는 구직자들

2005년 무렵, 취직에 관한 담론은 초봉 3,000만 원을 기준으로 했다.

'연봉 3천'붐은 아마 미디어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연봉 3천은 받아야 살 수 있는 거 아냐?"라는 맹랑한 말을 공공연히 했고, 3천 만원 버는 것 치곤 화려하고 여유 넘치는 과시적인 생활상을 보여줬다.

벤처붐 몰락과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사이에 낀 덕에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였고, 90년대 초반 호황을 잊지 못한 국민에겐 아직 허영심이 남아있었다. 드라마 시청률이 오를수록 '초봉 3천 만원'이란 수사는 익숙해졌고, 점점 중산층의 상징에서 당연히 받아야 할 평균 연봉 수준으로 흔한 것이 되었다.  

특히 학생들은 미래가 창창한 탓인지 3천을 넘어 희망연봉 5천도 가볍게 부르는 패기를 보이곤 했다. 졸업한 선배들은 "대기업 가면 정말 뼈 빠지게 일한다?"라고 겁주면서도 "일 많이 하는 건 중소기업 가나 대기업 가나 똑같아, 돈 많이 주는 곳이 최고야."라며 기꺼이 돈을 쫒도록 조언 아닌 종용을 해줬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15년, 연봉 3,000만 원은 그저 알량한 돈이 되어버렸다.

연봉 3,000만 원은 드라마에서처럼 화려한 중산층 생활을 하기엔 턱없이 적은 돈이 되었다. 평생 벌어도 30평 아파트는커녕 원룸 오피스텔을 사기도 힘들고, BMW나 벤츠 같은 고급 외제차를 몰기도 힘들며, 아들 딸 하나씩 자식 둘 낳는 건 매우 벅찼다. 가사에 전념하며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상을 차려줬으면 했던 아내는 나보다 늦게 퇴근한다. 맞벌이를 해야 가정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으로 표현되는 청년층 생활상의 변화는 합리적 선택일 수도 있다. 돈을 믿고 노력하다 결국 배신당한 선배들을 보면서, 돈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가정, 자녀, 집,  재산보단 여행, 여가, 취미, 다양한 경험 등 투입 비용 대비 효용이 높은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가기 시작한 거다.

'신의 직장' 트렌드도 변했다. 과거엔 이 타이틀이 대기업을 비롯해 회계사, 변호사, 제약회사 등 보수가 높고 전문 영역이 확실한 직업에 붙었으나, 점차 공무원, 교직원, 군무원 등 노동강도가 낮고 안정적이며, 출퇴근 시간이 확실한 직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노레드나 제니퍼소프트 등 사원 복지 수준이 높은 중소기업이 미디어를 타며 각광받는 직장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1일 6시간 노동제 추진한 보리출판사 윤구병 대표
1일 6시간 노동제 추진한 보리출판사 윤구병 대표

신의 직장?... 연기같은 트렌드일 뿐

'보리 출판사'역시 같은 이유로 '신의 직장'명단에 합류했다. 하루 근무시간 6시간, 오후 4시면 칼퇴, 초과 근무 발생시 휴가 부여 등 보리출판사가 추구하는 노동환경은 구직자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었다.

보리출판사가 근무시간을 줄인 방법은 적극적인 비효율 철폐였다. 내부 회의를 줄이고, 외부업체 미팅도 업무시간으로 계획했으며, 불필요한 외부행사나 인사도 없앴다고 한다. 근무 시간을 줄었으나 매출은 3% 이상 늘었다. 연장 근무를 수당 대신 휴가로 지급한 것도 기업 수익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였다. 기업은 인력비를 줄이고 사원은 충분한 휴식으로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이 회사 방침에 만족한 건 노동량이 줄은 게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기회가 늘어난 것에 있다는 점이다.

사원들은 여가가 늘어난 덕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데 시간을 투자하게 됐고, 화목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으며, 취미활동으로 이전보다 폭넓은 삶을 살 수 있었다. 막중한 업무량에 눌린 직장인 대부분은 물론이며, 이것저것 다 포기했다고 선언한 청년들도 부러워할만한 삶의 모습이었다.

미디어가 한국의 하드코어 한 노동문화와 삼포세대 모두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여론이 노동의 가치가 돈으로만 매겨져 사람을 부속품처럼 다루는 관행과, 전통적 형태의 가정을 꾸리려는 노력을 포기한 청년층 모두에 불편한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일 거다. 둘 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신의 직장'형태를 조금씩 바꾸며 진로를 정하는 청년들 앞에 연기처럼 나타났다 사라질 거다. 그러나 이것은 트렌드일 뿐 정답이 아니다. 정답을 찾고 싶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직장을 찾아 선택하는 게 그나마 나은 방법일 것 같다.

10년 전 그들이 3천 만 원에 성급히 노동력을 팔지 않았다면,  2~3년 넘게 시험 준비하느라 경제활동과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는 수험생들이 다른 곳을 바라봤다면 기업과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지금처럼 각박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는 건 물론 필요한 능력이지만, 평생 끌려다니기만 한다면 행복을 찾을 기회는 점점 멀어지기만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