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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름답고 위대한 열정

아름다운 예술은 열정의 소산이요 위대한 정치적 업적도 열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베토벤의 아름다운 교향곡 ‘운명’과 ‘영웅’, 그리고 ‘합창’등은 훌륭한 작곡가 베토벤의 열정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베토벤은 천부적으로 뛰어난 음악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청력이 좋지 않았다. 26세부터 더 나빠지기 시작한 그의 청력은 45세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귀머거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청력의 상실을 뛰어넘게 하였다. 피아노 소리를 듣기 위하여 나무 막대기를 입에 물고 막대기의 다른 끝을 피아노 뚜껑아래 대어 피아노의 진동을 감지하였다. 이런 방법을 통하여 수많은 곡을 만들어 낸 것이다. 1824년 제9번 교향곡 합창도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곡을 지휘하고 연주가 끝난 뒤 관중들은 우레같은 박수를 그에게 보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소래를 들을 수 없었다. 같이 공연한 여가수가 그의 손을 잡고 관중 쪽으로 몸을 돌려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관중들이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베토벤은 강인한 의지와 열정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역사에 남겨 준 것이다.

헬무트 콜은 동방정책을 계승하여 불굴의 의지와 뜨거운 열정으로 주변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서독을 통일하는 위업을 남겼다. 독일 통일과정에 결정적 거부권을 가진 것은 소련이었다. “독일통일은 모스크바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현실인식을 독일 정치인들이 공유하고 있었지만 고르바초프는 통일독일의 나토탈퇴를 주장하였다. 유럽속의 통일을 그리고 있는 독일로서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그러나 콜은 90년 7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G7정산회담에서 협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경제파탄과 크레믈린 보수파의 반발로 인하여 입지가 흔들리고 있을 때 2백만 마르크 상당의 식료품과 의복 등을 제공하여 고르바초프의 마음을 돌려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서방진영에도 통일의 적은 존재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대표적 국가였다. 영국의 대처총리와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은 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마자 모스크바, 바르샤바, 워싱턴으르로 뛰어 다니면서 독일 통일 반대를 부르짖었다. 콜은 미국을 통하여 영국, 프랑스를 설득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미국무장관 베이커의 어머니에게 7명의 대통령과 총리가 서명한 감동적 편지를 보내어 독일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적극적 협조를 당부하였다. 상당히 세심하고도 차원 높은 외교적 술책이었다. 통독은 1969년 집권한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과 집념과 열정으로 협력을 끌어낸 콜수상과 그의 참모들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 진 것이다.

정치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전환기에 직면한 우리나라에도 베토벤과 같은 열정을 지닌 문화 예술가가 있으면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우고, 헬무트 콜과 같은 열정을 지닌 위대한 정치가가 있으면 굳게 닫혀 있는 남북통일의 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