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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이 없어서…융합상품 출시 지연”

지난해 국내 대기업 A사는 ‘U-헬스 서비스’ 사업을 추진했다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 사업은 환자에 대한 진료와 처방, 개인별 상담관리 등을 원격으로 진행하는 미래형 의료서비스로 일컬어진다. 회사는 당시 국내 유명 대학병원 한 곳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추진 수개월뒤 사업진전이 점점 어려워졌다. 의료법상 원격의료에 대한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A사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원격 의료서비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면서 “융합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하루 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유통업체 B사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유통업체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지능형 탈의실’을 선보였다. 옷을 입은 채로 탈의실에 가면 고객의 치수가 화면에 나타나고, 점원의 추천에 따라 착용한 모습이 나타나는 시스템이다. 직접 입어보지 않아도 여러 가지 옷을 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B사 역시 매장에 이 탈의실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인체형상 정보 소유권’, ‘사용권 관리’, ‘운영에 대한 규정’ 등이 미비돼 출시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B사 관계자는 “최근 IT 신기술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다”면서 “시장 선점효과가 어느 부문보다 중요한 만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스마트폰’, ‘스크린골프’ 등 디지털시대를 맞아 융합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관련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6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국내 1346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융합산업 실태와 애로요인’ 조사 결과, 41.0%가 융합제품의 사업화 과정에서 시장출시가 늦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45.6%로 서비스업(29.8%), 건설업(32.5%)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융합제품은 산업간, 기술과 산업간 또는 기술간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시장을 창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한다.

해당법령이나 기준이 미비돼 융합상품의 상업화가 더뎌지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4곳 중 1곳은 제품개발이 이미 완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적용기준 미비, 불합리성 등으로 해당 제품의 인허가가 거절되거나 지연됐다고 응답했다.

출시지연으로 인한 손실액도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의 30.4%는 출시지연에 따른 손실 추산액이 ‘1억원 미만’, 27.5%는 ‘1억~10억원 미만’라고 답했다.

융합제품 확산과 융합산업 활성화를 위한 별도 지원법령의 제정 여부에 대해 91.5%의 기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필요없다’는 기업은 8.5%에 불과했다.

융합 관련 지원법이 제정되면 반드시 포함돼야 할 사항으로 ‘관련규정이 없는 융합제품에 대한 신속한 인허가 허용’(26.9%)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다음으로 ‘규제 및 애로 상시 발굴·개선 체계 구축’(25.3%), ‘전문인력, 기술자문, 컨설팅 등 지원확대’(21.0%), ‘융합제품 아이디어 사업화 지원’(13.7%), ‘융합산업 전담기관 설치’(8.3%), ‘융합제품 개발에 필요한 타인의 특허권 사용’(4.8%) 등을 꼽았다.

박종남 대한상의 조사2본부장은 “최근 기술-산업간 융합은 기업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중요한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다”며 “특히 법제도적인 측면에서의 한계가 융합산업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지적된 만큼 새로운 법령 제정 등의 조치도 충분히 검토해볼만 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