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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점검] 성남시 '지불유예선언'…다른 지자체들은 괜찮나

일선 지자체들의 초대형 개발 사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성남시가 지난 12일 재정 부족을 이유로 채무지급유예 선언을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일선 지자체의 재정 상태에 대한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

상당수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은 전임 단체장들이 진행하던 초대형 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대신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 의거한 도시환경정비사업(이하 도환사업)이나 교통로 정비 등 주거환경정비사업 쪽으로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와 같은 움직임들은 지방선거 이후 일선 지자체의 자치단체장들이 대폭 물갈이되며 기존집행부와의 정책차별화를 위한 의도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어 성남 사태를 기점으로 초대형 개발 사업들이 전면 백지화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정책 노선에 의한 차이든 사업 자체의 문제든 진행 중이던 사업이 중단되게 되면 기투입된 비용은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다”라며 “이미 투입된 비용들은 시민의 세금을 낭비함은 물론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 등 사업주체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업검토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남시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사업차질은 법적다툼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고 파급력을 감안했을 때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예산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수도권에도 ‘수두룩’

성남시 사태로 촉발된 지자체의 재정건전성 문제에서 수도권 일부 지역도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의 경우 강서구에서 야심차게 진행되던 ‘마곡지구 수변도시(워터프론트) 조성사업’은 이미 전면 재검토가 선언된 상황.

이 사업은 총 사업비 5조2천억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으로 이미 08년 12월에 착공에 들어간 이후 공사가 상당 부분 진척돼 사업이 전면 재검토 될 경우 이해당사자인 시민과 건설사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양시도 개발 사업을 둘러싼 재원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최근 안양시는 1천293억원 규모의 안양 6동 검역원 부지 매입 계약을 놓고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금 납입 기한인 이달 말까지 재원 조달 방안과 위약금 조항을 감안해 매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이지만 국철 안양구간 지하화와 생태하천 복원 등 다른 개발 사업이 겹치며 사업 자체가 사실상 무산될 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렇게 수도권 일부지역에서 굵직굵직한 사업을 둘러싼 재검토 논란이 불거지자 지자체와 공공기관·민간기업 간의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마곡지구 수변도시(워터프론트)사업에 참여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사업이 전면 재검토되고 계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라며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다면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 청구 등의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 호화청사가 재정발목 잡은 대전·부산

한편 호화청사 건립을 위해 예산을 물 쓰듯 쓰며 재정난이 도래한 일부 지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너도 나도 호화청사 건립에 목을 매다 재정악화의 단초를 제공하자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

특히 지방선거 이후 공을 넘겨받은 신임 자치단체장들에 의해 방만한 재정운영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형국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재정난에 허덕인 결과 2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직원들 월급을 지불한 바 있는 부산 남구청이다. 지방채를 발행해 구청 직원들의 인건비를 충당한 것은 사상초유의 사태로 여겨지고 있어 전임 구청장에 대한 책임논의가 커져가고 있다.

이와 관련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일각에서 부산 남구청의 경우 재정난의 원인을 부동산 교부세 삭감과 복지예산이 늘어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07년 400억6천만원을 들여 1만6천34㎡에 지하 2층, 지상 7층짜리 신청사를 건립했던 것이 재정난에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부산 남구청은 신청사 건립비용 중 국.시비를 제외한 구비 89억원을 지방채를 발행하여 처리했고 매년 9억원씩 상환하고 있는 실정이라 호화청사가 재정의 발목을 잡은 꼴”이라고 덧붙였다.
호화청사 건립이 재정난을 부추긴 곳은 비단 부산 남구청뿐만이 아니다. 대전 동구청의 경우에도 신청사 건립에 막대한 예산을 소진하며 예산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달 20일 이후 신청사 건립을 중단한 대전 동구청은 총 사업비 707억원이 소요되는 신청사를 위해 166억원의 지방채를 사들이며 채무 총액이 29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비난의 눈초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지방 지자체도 ‘전전긍긍’

지불유예를 선언한 성남과 대전 동구청, 그리고 일부 수도권 지역 외에도 지방 지자체의 재정난도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론이다.

일부 지자체의 예산난이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해지며 대형 개발 사업들이 좌초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14일 건설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포항 개발 사업이 강원도 속초시의 재정을 압박하며 재검토 논의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포항 개발 사업은 속초시와 농림수산식품부가 03년 대포항을 종합 관광의 요충지로 개발하기 위해 진행한 사업으로 총 공사비가 604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하지만 현재 착공이 76%가량 진행된 상황에서 속초시가 매립지를 분양하지 못하며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쌍용건설 관계자는 “대포항 개발 사업은 시공사인 쌍용이 자부담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속초시가 매립지를 분양해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라며 “속초시가 총 공사비를 3년에 걸쳐 상환해야 하는데 올해 말까지 지급해야 할 돈 300억원 조차 매립지가 분양이 되지 않아 지급이 어려운 형편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속초시에서는 대포항 사업을 시가 무리하게 진행하며 재정이 파산 직전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방에서 지자체 예산난이 초미의 관심거리로 부상하며 재정 부담을 고려해 진행 중이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자치단체도 생겨났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최근 1조9천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도시철도 2호선 건설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공식적으로 밝히며 예상보다 재정난이 심각함을 방증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광주시는 재정자립도가 46%에 불과하고 경기침체에 따른 중앙정부의 교부세 감소로 일부 사업이 백지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취재에 응한 광주시청 관계자는 “광주의 경우 재원이 워낙 부족해 불필요한 사업을 재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재정난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시 입장에서도 고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