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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 안국역 역세권은 조선시대의 전통예술이 숨 쉬는 곳으로 유명하다. 남쪽에는 인사동, 북쪽에는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이 위치해 조선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안국역이 생기기 전 옛날 조선시대에는 북촌한옥마을(현 가회동)에 조선 사대부들이 살았던 곳이다. 서쪽에 위치한 경복궁과 가까워 사대부 관원들이 출퇴근하기 용이했다. 임금이 편전회의를 소집하면 거리가 가까워 모이기 쉬워 북촌한옥마을은 사대부들의 근거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넘기며 이 곳 한옥마을의 가옥들은 잘 보존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근 한옥들은 일반사람들이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고 벤처회사, 옷 가게, 미술관으로도 사용돼 실생활에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인사동은 조선시대의 미술과 골동품을 볼 수 있고 도심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조선시대 때 인사동은 중인들의 거주지였고 조선 초기부터 미술 활동의 중심지로 형성됐다. 1930년 일제 강점기 때는 고미술을 취급하는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골동품 거리로 변화했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미술 문화 거리로 성격을 띠게 됐고 최초의 근대적 상업 화랑인 현대 화랑이 들어서고 상설전시 형식으로 골동품과 고미술, 화랑, 고가구점 등이 생겨나면서 전통문화 예술 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88서울올림픽 이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고미술품과 민속공예품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인사동은 외국인 필수 관광코스로 낙인됐다.
90년대에는 인사동이 유명세를 받으며 번화가로 성장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어느새 유흥업소들이 들어섰고 불명의 공예품들이 넘쳐나기 시작해 미술 문화 거리의 본질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번화가가 되다보니 땅값도 높아져 높은 임대료에 부담을 느낀 화랑들은 인사동을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인사동이 제 모습을 잃어갈 무렵에 서울시가 인사동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2006년부터 '인사동 제 모습 찾기' 운동을 펼쳤고 이러한 노력 끝에 전통 문화의 거리 모습을 되찾게 됐다. 또 2000년대에는 한류열풍이 불면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인사동을 많이 찾고 있다.
인근 전통찻집과 한정식집은 바쁜 도시생활을 보낸 직장인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거리 공연까지 더해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