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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는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 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가격은 2만5천원.
이 전기는 잡스가 '자신에 대해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생전에 직접 아이작슨에게 의뢰해 집필된 것으로, 아이작슨은 집필을 위해 2009년부터 2년간 40여 차례에 걸쳐 잡스를 인터뷰했으며, 그의 친구, 가족, 동료, 라이벌 등 100여 명의 주변 인물들을 만났다.
아이작슨이 만난 사람 중에는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 빌 게이츠,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니브, 애플 후계자 팀 쿡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기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잡스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잡스의 내밀한 개인사는 물론, 애플의 창업과 성장사,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탄생 비화,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그의 경영 비법 등 잡스와 애플의 모든 것이 담겼다.
◇아이패드에 삼성 칩 쓰게 된 사연
책에는 애플이 아이패드에 삼성전자의 칩을 사용하게 된 사연도 나온다. 책에서 잡스는 애플이 아이패드에 삼성전자가 제조한 시스템온칩(SoC) A4를 탑재한 이유에 대해 인텔의 모바일 제품 제조 능력을 믿지 못하고 삼성전자의 신속한 개발력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잡스는 당초 아이패드에 인텔이 개발 중인 낮은 전압의 아톰 칩을 사용하려 했는데, 아이팟 부분 수석 부사장이었던 토니 파델은 보다 단순하고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ARM 아키텍처 기반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잡스는 손을 들었다. '알겠네. 최고의 부하들을 거스를 순 없지.' 그러고는 아예 반대 방향의 극단으로 내달렸다. 애플은 ARM 아키텍처의 라이선스를 얻는 한편, 팰러앨토에 있는 사원 150명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회사 P.A. 세미를 인수하고 그들에게 A4라는 맞춤형 SoC를 개발하게 했다. A4는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국의 삼성에서 제조되었다."
그는 인텔을 택하지 않은 이유로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 증기선처럼 정말 느리다는 것"과 "경쟁상대가 될 수도 있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진 않다는 점"을 꼽아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속도에 있어서 경쟁력을 갖췄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동시에 삼성전자가 지금과 같은 애플의 경쟁상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아이맥 제작 과정에서는 "아이브의 팀은 한국 제조 업체와 협력해 케이스 생산 공정에 완벽을 기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아이폰, 아이패드의 SoC 공급사로 선정하면서 삼성전자는 SoC 시장에서 전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하지만 잡스와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OS 기반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관계가 급속하게 멀어지게 된다. 특히 2010년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내놓고 HTC를 통해 스마트폰을 선보이자 잡스는 "(구글의 행동은) 엄청난 도둑질이다. 필요하다면 죽는 순간까지 남아 있는 내 인생과 은행에 있는 애플 자금 400억달러를 모조리 바쳐서라도 상황을 바로잡을 생각이다.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고 흥분한다.
애플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처음 만든 진영의 선봉장 HTC에 특허 소송을 걸었고, 이어 안드로이드 진영 다크호스로 부상한 삼성전자를 다음 타깃으로 삼았다.
◇잡스의 경영철학 … 완벽주의와 미니멀리즘
책 속에는 특히 완벽주의자로서의 잡스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다수 소개되어 있다.
제품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을 쓰는 잡스 특유의 완벽주의는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장롱이나 울타리 같은 것을 만들 때는 안 보이는 뒤쪽까지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철학의 가장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실천 사례는 잡스가 칩과 다른 부품들을 부착하고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회로 기판을 철저하게 검사한 경우였다. 어떠한 소비자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인쇄회로 기판에 대해 "저 부분 정말 예쁘네. 하지만 메모리칩들을 좀 봐. 너무 추하잖아. 선들이 너무 달라붙었어"라는 식으로 심미학적인 비평을 하기도 했다.
잡스는 심지어 투병 중에도 디자인에 집착했다.
"한번은 잡스가 매우 안정적인 상태일 때 폐 전문의가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했다. 그러나 잡스는 그것을 벗겨 내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그러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겠다고 지시했다."
잡스는 공식 전기 집필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쓰는 게 싫어서 내가 직접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
또 애플의 제품 디자인에서 드러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은 그가 일하던 비디오 게임 제조회사 아타리 게임의 단순함과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클러 주택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