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유로존 재정·채무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유럽중앙은행(ECB)의 역할을 놓고 독일과 프랑스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17일(이하 현지시간) 국채 발행에서 독일과의 금리 차이(스프레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자금조달 압박이 심화된 프랑스는 독일에 ECB의 역할 확대를 더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의 불협화음도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프랑스는 ECB가 나서서 유로화뿐만 아니라 유럽의 금융도 안정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독일은 유럽연합(EU) 조약에는 그런 조항이 없다며 각 국가가 개혁과 긴축을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라고 ECB 역할 확대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의 국채 금리가 계속해서 상승하자 프랑수아 바루앵 재무장관은 16일 밤 ECB의 역할에 대해 "ECB가 유럽 구제기금을 지원하는 것만이 채무 위기를 대처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밝혀 ECB 역할 확대에 부정적인 독일에 대한 불만을 간접 표현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 정부대변인인 발레리 페크레스 예산장관도 16일 오전 각료회의가 끝난 직후 ECB의 시장 개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는 17일 10년 만기 국채의 스프레드(독일과의 금리 차이)가 2.00%포인트로 벌어지면서 또다시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곧이어 매각한 69억8천만유로어치의 2-5년물 국채도 발행금리가 2% 후반대로 크게 오른 가운데 거래되면서 큰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
이미 두차례나 긴축안을 내놓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4월 대선을 5개월가량 앞둔 상황에서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책을 펼 수 없는 상황이다. 긴축정책을 또 시행하게 되면 가계소비에 의존하는 프랑스 경제가 침체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ECB 역활 확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존 재정위기 확산 저지를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나는 그러한 접근방법이 지금 당장은 적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위기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ECB가 유로존의 취약점을 해결할 것으로 믿는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에 스스로 확신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메르켈의 이 같은 언급은 유로존 재정 위기가 역내 2위 경제국인 프랑스로 전이되고 있음에도 ECB의 유동성 공급 확대에 독일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메르켈은 "지금 혼란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엄격한 재정 규칙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