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국내외 경제 여건이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에서 3개월 만에 다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실제로 한은은 지난 7월 금리를 인하했지만 생산·소비·투자·수출 지표가 모두 더 나빠졌고, 세계 경제 역시 여전히 안갯속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우리 경제성장률마저 애초 예상을 크게 밑도는 2%대로 전망되는 등 우리 경제는 또 다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7월 인하 당시 경기가 바닥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후반기 들어서는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상저하고'의 낙관론이 나왔었지만 위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
특히 정부가 내놓은 각종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한은은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는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한은의 이번 금리 인하 결정을 놓고 경제 흐름이 '상저하고'에서 '상저하저'로 바뀐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내려봐야 실효를 거둘 수 없다며 "적기를 놓쳤다"는 비판론도 나오고 있다.
한은은 이날 경기저점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실제로 8~9월간 국내 경제는 계속해서 살얼음을 걸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실질소득 감소에다 가계부채에 짓눌려 크게 위축된 소비로, 8월 국내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9% 감소, 2004년 11월(-7.2%) 이후 가장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할인점 매출도 4월부터 5개월째 감소했다.
소비심리도 얼어붙어 소비자와 기업 등 민간주체의 경제심리를 나타내는 경제심리지수(ESI)는 41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89포인트로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이다.
광공업 생산도 석 달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3년3개월 만에 가장 낮다.
7월 전월 대비 2.5% 확대됐던 설비투자는 8월 13.9%나 급락했고, 건설투자 역시 같은 기간 6.8% 증가에서 8월 6.6% 감소로 돌아섰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유럽과 미국에 이어 중국의 경기 악화로 빨간 불이 들어왔다.
우리나라 수출은 최근 3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7월과 8월에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8.8%, 6.2%씩 감소하는 '쇼크' 수준이었고, 9월(-1.8%)에는 감소폭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외 경제도 불안해 미국은 정부 지출이 일순간에 급감하는 '재정 절벽'의 위험에 놓여 있다.
상설 구제금융기구인 유럽안정화기구(ESM)가 출범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스페인이 재정감축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등 유럽 재정위기는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8%를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우리 경제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은은 올해는 2%의 저성장을 인정하되 내년 경제에는 최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한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성장률 전망을 세 차례나 낮추면서 금리를 동결한다면 비난이 쏟아질 것이 자명해 정치적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토러스투자증권 공동락 연구원은 "금리 인하가 늦어질수록 통화 당국의 경기부양 의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유동성 과잉으로,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 이후 국내 시장으로 약 4조원의 외국자본이 들어온 상태다. 이런 가운데 기준금리 인하는 과잉된 유동성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금융과 실물의 연관이 약해지며 금리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유동성의 함정'에 빠져 돈이 중앙은행과 은행 사이에서만 오가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소비자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체감물가가 높다는 점도 문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민이 몸으로 느끼는 체감물가 상승률은 5.0%로 지표의 4배나 되는데, 금리를 인하하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금리를 내렸지만, 국고채 3년물의 금리는 10일 현재 2.71%로 여전히 기준금리 아래에 있는 등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이 매일 '사상 최장기간'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특히 9월 당국의 주택 취득세 감면 방안으로 주택대출 수요가 다시 고개를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놓고 뜸을 들이는 사이 우리 경제가 '상고하저'에서 '상저하저'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유에서 '실기론'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달이 아닌 8월이나 9월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인하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기관 관계자는 "결국 한은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