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단기대출, 신용대출, 변동금리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가 인하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민에 대한 정책적 배려로 판매하는 대출상품도 중도상환수수료 부담이 줄어드는 등 획일적인 수수료 체계가 차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월가 점령시위'로 금융권 수수료 체계를 개편한 지 2년 만으로, 저금리 추세에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로 갈아타려는 대출자들이 대출금을 일찍 갚겠다는 데 은행이 거액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해내자 금융당국이 불합리한 부분을 한 번 더 뜯어고치겠다고 나선 것.
대출금 중도상환수수료는 연간 수천억원에 이르고 있고, 수수료 책정에 있어서 불합리한 면이 많이 소비자들의 불만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도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며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업계는 조만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중도상환수수료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연합회는 최근 은행법학회에 관련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중도상환수수료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수수료율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라며 "특히 서민 대출에 고율의 수수료를 매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도상환수수료는 지난 2011년 9월 한 차례 개편됐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금융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우선 모든 대출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수수료 책정 방식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 금융회사가 3년 안에 대출금을 갚으면 은행은 대출금의 최대 1.4~1.5%를, 제2금융권은 약 2~4%를 중도상환수수료로 받는다.
남은 대출기간에 비례해 수수료 액수가 달라지는 '잔존 일수 기준 체감방식'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이것이 적지 않은 불만을 주고 있다. 돈을 일찍 갚겠다는데, 일찍 갚으면 갚을수록 만기 때까지 내야 하는 이자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도상환수수료를 둘러싼 불만이 늘어난 데는 저금리 기조도 한몫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금리가 낮아지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타고 싶은데 중도상환수수료가 이런 '금리쇼핑'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리쇼핑과 관련해 "중도상환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대출자의 '저금리 갈아타기'를 막으려는 것"이라며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금융회사도 3년 뒤 받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려고 비용을 치러 자금을 조달했는데, 대출자가 돈을 일찍 갚아버리면 '노는 돈'이 돼 자금운용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 손해를 본다는 입장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획일적인 적용 방식을 대출기간, 금리부과 방식, 대출종류, 대출자 등에 따라 차등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용대출과 담보대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장기금리와 단기금리,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질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가령 담보대출은 근저당권 설정 등에 비용이 발생해 수수료를 받는 게 타당하지만, 신용대출은 자금조달과 운용의 불일치에 해당하는 부분만 수수료로 받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소액전세자금 대출이나 저소득층 전용 대출 등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상품은 가능하면 일찍 갚는 게 이자상환 부담을 줄일 수 있는데도 중도상환수수료를 매기는 것은 지나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정금리 상품은 은행이 금리변동 위험을 감수하므로 중도상환수수료를 매기는 게 합리적이지만, 변동금리 상품은 수수료를 없애거나 낮은 수준으로 정하는 게 합리적이며 세계적 추세에도 맞다"고 설명했다.
TF는 대출 만기를 2~3차례 연장해 총 대출기간이 3년을 넘길 때도 중도상환수수료를 부담토록 하는 게 타당한지도 검토할 계획이다.
중도상환수수료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거론했고 금융위원회가 대통령 업무보고 때 개선책 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7개 국내 은행이 지난 3년간 받은 중도상환수수료는 1조2000억원이다.
한편, 금융권 관계자는 "중도상환수수료는 계약 위반에 따른 배상책임을 묻고 금융회사의 안정적인 자금 운용을 목적으로 받는 것이지 이익을 더 얻으려는 게 아니다"며 "무작정 내리거나 없애면 결국 대출금리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금융산업연구실장은 "수지를 보전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금조달이나 금리변동에 따른 위험을 부담하는 만큼 페널티(벌칙)를 부과하는 게 중도상환수수료"라며 "이나마도 없애면 영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