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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8일 오후 3시경 러시아 상/하원 합동 회의에 등장해 예정된 국정 연설을 했다. 그는 준비한 원고를 40분 동안 읽으며 크림반도와 러시아의 연계성은 예전부터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하는 것은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에 빼앗긴 땅과 언어를 되찾음이며, 크림 반도의 주민들은 투표로 이를 지지했다는 논리를 펼쳤다.
특히 푸틴은 올해 초 우크라이나에서의 시위로 인해 정권이 친서방 쪽으로 교체된 점을 언급하며, “이는 쿠데타”라고 직접적으로 규정했다. 다만 “크림의 모든 민족과 문화, 언어는 존중을 받을 것이며, 추가적인 영토 확장은 없다”는 발언을 하면서 갈등의 확산은 피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또한 서방 측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통해 동유럽에 무기를 배치하고, 우크라이나 신정권이 나토 가입을 이야기하는 것은 러시아의 안보에 위협을 준다면서 서방 국가들을 비판했다.
이어 푸틴은 미리 러시아 의회에 와 있던 크림 자치공화국 및 세바스토폴 특별시의 정치 대표단과, 의사당에서 러시아-크림 합병 조약 체결식을 열었다. 이후 공식 합병을 위해서는 러시아 헌법에 규정된 영토 조항을 고치는 것과 함께, 의회 상/하원의 비준 절차가 필요하다. 서방이 마지막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 절차 중에 진전된 상황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크림이 이러한 절차를 거쳐 러시아령이 된다면, 이는 소련 해체 이후 20년 만에 러시아의 영토가 확장되는 것이다. 작금의 사태는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 공화국이 ‘러시아 귀속’을 결정한지 이틀 만에 처리되었다. 그만큼 푸틴은 여기에 대해 치밀하게 계획해 왔던 것으로 보이며, 서방은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백악관은 다음주에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핵안보 정상 회의에서 G7 국가들과 함께 러시아의 추가 제재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차 세계대전 상황’까지 언급하며 러시아의 행보를 경고했다. 영국은 러시아와의 합동 군사훈련이나 군수품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고,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도 20일부터 열리는 유럽 정상 회의에서 강한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의 대처는 아직도 미미한 상황이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도합 서른 명이 넘는 러시아와 크림 인사들에 대한 경제적 제재 조치를 단행했으나, 실제로 그들이 서방 측에 놓아둔 해외의 계좌나 자산은 별로 없어 효과가 의문시된다. 하지만 러시아 민간 기업에 대해 추가적인 제재를 하는 것은 서방 국가에도 역시 손실을 끼치며, 특히 러시아의 원자재와 식량에 의지하는 유럽의 경우 이 문제는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러시아를 G8 회원국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으나, 독일 메르켈 총리는 아직 G8 제외까지 나가지는 않았다면서 상이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 중국 신화 통신이 보도하였다. 특히 독일이 러시아에 가스와 원유를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 당장 강하게 나가기 어렵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편 크림 반도에 남아있는 우크라이나군 기지가 18일 신원 미상인 이들의 공격을 받아, 군인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한 사고가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군 대변인은 공격 당시 러시아 국기가 있는 트럭이 이용되었다고 밝혔으나, 정확한 용의자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 반도에서는 아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대치 중이어서, 앞으로도 전쟁에 가까운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 향후에도 상황이 안정되는가는 미지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