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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친러 정권에 항의하는 시민들 || 위키백과 (Nessa Gnatoush 사진 제공) |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난 11월, 우크라이나 정부가 서방과의 경제사회 협정을 중단하면서부터 일어났다. 2008년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는, 신흥 국가에 속하는 우크라이나도 피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2010년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에게 정권이 넘어갔지만, 2013년 말에 이르러 우크라이나가 갚아야 할 채무는 외환보유고를 넘어서게 된다. 이때 경제 지원을 제시한 두 세력이 있었는데, 하나는 유럽연합 및 국제통화기금(IMF)이었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였다.
우크라이나, 특히 북서부의 시민들은 유럽 쪽의 지원을 바랐다. 하지만 유럽과 IMF가 내건 지원 조건은 까다로웠다. 우크라이나가 빚을 갚을 자구책으로 연금이나 에너지 가격 등을 조정하기 바란 것이다. 반대로 러시아는 무조건적인 150억 불 차관 지원을 약속하면서 영향력 강화를 꾀했다. 그러자 야누코비치 정권은 더욱 러시아 쪽으로 기울게 되고, 이는 러시아를 꺼리고 친서방 정책을 원하던 야권 및 시민들과의 충돌로 연결되었다.
결국 지난해 12월부터 우크라이나는 내전에 가까운 상황으로 들어갔고, 100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재를 선언했고, 시위대의 항쟁이 이어져 야누코비치 정권은 물러나게 된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올해 5월의 대선을 예고하며 과도 정부의 수립을 선언했고, 티모셴코 전 총리를 석방하는 등 친서방 정책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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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크림 수도 심페로폴 시내의 한 관청 건물 앞에서 15일(현지시간) 정체 불명의 군인들이 장갑차를 동원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그러자, 우크라이나 사태를 주시하던 러시아의 반응이 시작되었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주둔하고 있던 흑해 함대와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웠으며, 그곳으로 수천 명의 병력을 보내 사실상 점령 상태에 들어갔다. 평소 자신들은 러시아인으로 우크라이나에서 홀대를 받는다고 생각하던 크림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이를 반겼으며, 크림 자치 공화국은 독립 수순을 착착 밟아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럽 연합이나 미국은 러시아 주요 인사들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행하고, 무력을 동원한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 사태 자체로 세계 경제에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이 서로 투자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제재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특히 러시아가 생산하는 천연가스와 곡물의 양과 가격은 유럽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16일 크림 자치 공화국은 주민 투표를 거쳐 러시아로의 귀속을 결정했다. 그러자 푸틴은 이틀 만에 제 크림을 합병하는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서방의 반발에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은 의회와 헌법재판소의 처리 절차를 남겨두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이에 반발해 군대를 대기시키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현재 러시아와 친밀한 인도를 제외하면,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하지만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묵인하고, 러시아의 국력이 국제 사회의 반발을 상쇄하고 있는 상황이다.
18일 미국 증시는 푸틴의 더 이상의 영토 합병은 없으리라는 의회 발언과, 각종 경제 지표의 호조 소식으로 인해 0.5~1% 가까이 오르며 마감되었다. 19일 현재 한국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로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장기화되고,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사태에 변수가 생길 경우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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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과정을 정리한 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