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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EQ900 등장으로 '고급차' 시장 서열 각축전

2015년형 에쿠스
2015년형 에쿠스

회사에서 임원의 직급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차'다. 사장에서부터 상무까지 타는 차종도 암묵적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보통 법인차로 많이 사용하는 대형차는 에쿠스, 체어맨, 제네시스, 그랜저 등이었다. 그런데 제네시스가 현대차의 새로운 고급 브랜드로 런칭되면서 이 서열에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다.

<현대 에쿠스 - 서열 위협받는 최고 존엄>

현대차의 최고급 대형 세단 위치애 있던 기함급 모델 에쿠스, 현대자동차에선 부회장, 사장급 임원에게 지급되며, SK, 롯데, 포스코, GS, 한진, 한화에서도 사장과 부사장급, 혹은 대표이사급에게 지급돼 가장 높은 서열에 있는 차종이었다. (사장-부사장 지급 차량 간에 배기량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 오너가의 일원인 현대 현정은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에쿠스 VS500의 오너였으며, 정치인과 연예인 등 사회유명인사들도 에쿠스를 애용했다. 방탄 에쿠스 리무진 차량은 대통령 의전차량으로 쓰였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때도 영접 차량으로 쓰였다. 그야말로 한국 럭셔리카를 대표하는 브랜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에쿠스 브랜드가 수입차와의 경쟁에서 큰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고, 1998년 이후 지속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주 타켓층인 4~50대에 어필하기 어렵게 돼, 이후 신생 '제네시스'브랜드로 편입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쿠스 브랜드가 폐기되고, 제네시스가 현대차의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가 된 것이다. 앞으로 기업의 사장급 임원 차량이 EQ900등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으로 대체될 가능성도 높다.

 

제네시스 프라다 모델
제네시스 프라다 모델

<현대 제네시스 - 3세대는 1, 2세대와 다르다?>

기존 1~2세대 제네시스는 주로 전무급이 타던 차였다. 현대차에선 부사장에게 지급되는 차였지만, SK, 포스코, GS, 한진, 한화 등에선 상무, 전무 직위에 제네시스를 지급했다. 다만 현대중공업에선 임원 직급과 관계없이 제네시스를 관용차로 통일했다.

1~2세대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후륜구동 고급 대형 세단 라인이었다. 에쿠스보단 작고, 그랜저보단 큰 크기로, 미국식 분류에선 에쿠스와 동일한 Full-Size로, 유럽식 세그먼트에선 준대형인 E세그먼트에 속했다. 하지만 가격이나 내장 트림, 엔진 배기량 등이 같은 준대형차인 그랜저, 알페온, K7, SM7, 임팔라보다 높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다.

 

뉴 체어맨
뉴 체어맨

<쌍용 체어맨 - 에쿠스와 제네시스의 틈바구니>

임원급 관용차로 체어맨을 지급하는 기업은 SK, 한화 등으로, 현대차에 비하면 비중이 매우 작은 편이다. SK에선 부사장급에, 한화에선 전무급에 지급한다. 에쿠스보단 하위, 제네시스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체어맨 판매량 60~70%가 최고급 사양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최고급을 옵션을 선택해야 제네시스와 대적할 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체어맨이 데뷔 당시엔 동급에서 가장 길고 넓은 차체 크기를 자랑한데다, 벤츠를 연상케 하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은 '고급차의 대부'였지만, 지금은 브랜드 이미지가 낡은 데다, 체어맨H가 지난 1월 경쟁 차종보다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회사측의 고민 끝에 단종되어 더 이상 구매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 그랜저
현대 그랜저

<현대 그랜저 - 임원급 관용차의 마지노선>

그랜저는 제네시스, 체어맨보다 한 단계 낮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포스코, 한화, 한진 그룹 등에선 그랜저를 상무, 혹은 상무(보)에 지급하고 있었고, GS는 상무급 관용차로 지급하고 있었다.

그랜저는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현대차의 플래그쉽 모델이었으나, 뉴 그랜저를 이을 새로운 모델이 에쿠스 브랜드로 갈라져나가며 입지가 애매해졌다. 게다가 2008년도에 제네시스가 등장하며 고급 세단으로서의 위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기아 K9
기아 K9

<기아 K9 - 애매한 포지셔닝>

K9은 기아자동차의 플래그십 최고급 대형 세단이었으나, BMW 5시리즈, 벤츠 E클래스 등 독일 프리미엄 카 준대형 모델과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며 포지션이 애매해져 버렸다. 고급차 이미지를 확보하지 못한 탓에 기업 임원 관용차에서도 외면받게 돼 한화 그룹에서나 전무에게 지급하는 차로 사용하고 있다. 덩치가 더 큼에도 불구하고 제네시스, 체어맨과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

현대 아슬란
현대 아슬란

<현대 아슬란 - 잘못된 포지셔닝>

아슬란은 내수시장에서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 틈새를 공략하는 차량으로 기획되었으나, 그랜저와의 차별성을 어필하지 못해 포지션이 붕 뜨게 됐다. 기업에서도 사실상 그랜저를 관용차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고, 바로 부장급에게 관용차를 지급할 이유도 없어 아슬란이 파고들 자리가 없다. 굳이 경쟁을 하려 해도 같은 회사 제품인 그랜저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현대자동차가 그랜저를 버리고 아슬란에 힘을 실어줄 유인도 없다. 잘못된 포지셔닝 전략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