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가 이어지면서,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의 헌신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미국의 의료진들도 현재 사투를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한 유명 병원 의료진이 감염 취약군임에도 사명감 하나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다 감염돼, 한 달 만에 숨을 거두기도 했다.
지난 4월, 신규 확진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던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했다. 이에 간호사, 의사, 호흡치료사 등 의료진들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보호장비 없이도 일해야 했다. 1회용 마스크를 1주일간 쓰는가 하면, 1회용 안면보호구도 씻어서 다시 써야 했다. 급기야 미 전국의 중증 및 말기 환자돌봄 간호사들 약 50만명이 가입해있는 최대 단체인 미국 중환자돌봄 간호사협회(AACN)는 연방정부와 공공부문에 개인보호장비(PPE) 제공을 요구하고 나서는데 이르렀다.
지난주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5일 연속 1000명을 넘었고, 지난 28일에는 두달여만에 최다 사망자가 나왔다. 의료진과 물자가 부족해, 텍사스주 히댈고카운티에서는 일부 환자들이 들것에 누운 채 10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진료를 받아야 했다. 현재 응급실 요원과 위독환자 간호원, 호흡치료사 등 군 의료진까지 투입된 상황이다.
한편, 미국 의료진들과 함께 언급되는 '호흡치료사'가 눈길을 끈다. 미국에는 간호사를 돕는 다양한 보조인력들이 있으며, 그 중 호흡치료사가 있다. 이들은 네블라이저(nebulizer) 치료나 동맥혈 채혈 검사, 응급상황 시 기도 담당, 각종 산소요법과 호흡보조기구 관리 등을 맡는다. 국내에서는 간호사가 이러한 역할까지 수행해, 잘 알려지지 않은 직종이다.
◆ 호흡치료사라는 직업
호흡치료사(Respiratory Therapist)는 만성호흡기 질환이나 호흡곤란을 겪는 환자들에게 호흡치료를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호흡기내과의사, 중환자 전문의사와 호흡치료사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환자에게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호흡이나 심폐질환 환자에 대한 인터뷰 및 검사를 수행하고, 환자의 치료계획을 짜기 위해 의사와 상담을 진행한다. 또한 폐의 용량을 측정하는 진단검사를 진행하며 물리적 치료, 에어로졸 약물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환자를 치료한다. 치료의 진행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기록하는 한편, 장비, 약물 등의 사용법에 대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와 함께 호흡치료사는 호흡치료 테크니션(respiratory therapy technician)을 감독하고, 검사결과를 평가한다. 미국에는 호흡치료사 외에 호흡치료 테크니션이라는 별도의 직업이 존재한다. 이들은 의사와 호흡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에어로졸 테라피, 체위 배농법 등의 호흡기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호흡치료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대(associate degree) 이상의 관련 학위를 갖고, 주에서 인증 받은 교육프로그램(an accredited respiratory therapy education program)을 이수한 후 인증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주요 인증기관으로는 NBRC(National Board for Respiratory Care)가 있다.
호흡치료사는 처음 인증을 통과한 공인호흡치료사(certified Respiratory Therapist, CRT)와, CRT가 되고 난 후 2년 이상의 근무경력과 소정의 추가 교육, 시험을 통과한 등록호흡기치료사(Registered Respiratory Therapist, RRT)가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4년 약 12만700명의 호흡치료사가 근무하며 독립된 전문 직종군으로 정착화됐으며, 2024년까지 약 12%(1만4900명)의 일자리 성장률 증가가 예상됐다.
또한 미국 노동통계국에서 발간하는 직업전망(OOH)에 따르면, 2026년까지 호흡치료사 고용률이 23%가량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호흡치료사의 연봉은 지난 2017년 기준 5만540달러(약 6000만원)에서 9만7500달러(약 1억1000만원) 수준이다.
한편, 일본에서도 호흡치료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일본흉부외과의학회와 일본 호흡기학회, 일본 마취과학회 등이 합동으로 호흡요법인정사 인정위원회를 설립하고, 1996년부터 호흡요법인정사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임상공학기사, 간호사, 준간호사, 이학요법사 등의 의료직종에서 호흡요법을 습득해 호흡관리를 수행하는 의료팀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개발됐다.
일본의 호흡치료사는 독립 직종은 아니며, 관련 의료 인력이 해당자격을 취득해 활동하고 있다. 합격률은 60% 내외이며, 지난 2013년까지 2만명 이상의 간호사가 합격했다. 미국과 같이 호흡요법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직업화의 움직임은 특별히 없는 상황이다.
◆ 2015년 '메르스 사태' 계기로 관심…국내서는 아직 '신직업'
2013년부터 한국고용정보원은 국내에 없는 잠재적 직업이나 선진국에 비해 국내에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직업 발굴에 나섰다. 2년 후인 2015년에는 취업자 수 증가로 '성장 산업'으로 분류됐던 보건업종과 관련, 질병역학조사원(Epidemiological Investigator)과 호흡치료사(Respiratory Therapist) 등의 신직업을 소개했다.
질병역학조사원의 경우 인력 확충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소개됐다. 당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로 인해, 전국 34명의 역학조사관들은 하루 20시간이 넘는 격무와 감염 위험 속에서 고군분투했었다.
이들의 역할은 감염병의 전파 경로를 추적해 추가 확산을 막는 것으로, 환자가 경유했거나 발생한 의료기관을 방문해 의학적 지식을 토대로 감염경로 등을 추적·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환자가 급격히 늘어가면서 메르스의 행적 파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됐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 드러났다. 2015년 5월2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후 12월23일 '종식 선언'을 하기까지 200여일 동안, 186명의 확진자와 3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메르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한 종으로, 2012년 6월 처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견된 신종 전염병이다. 앞서 2002년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도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었고, 현재 급성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초기 명칭은 '사스 코로나바이러스2'였다. 공통적으로 감기 증상과 호흡기 질환을 동반한다.
국내에서 폐렴 등 만성 호흡기 질환이 증가하는 와중에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면서 호흡치료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고,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의 호흡치료사가 국내에서는 '신직업'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호흡기 전문치료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20년 전부터 있었다. 병원 수준에 따라 제공되는 호흡치료 수준의 차이가 커, 전문적인 호흡치료 수행을 위해서는 호흡치료사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돼 왔다.
이후 2011년 보건사회연구원은 호흡치료사 자격신설에 대한 검토를 제안했다. 이어 2012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국내 의료분야에서 호흡치료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중환자실 호흡치료 지원인력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호흡치료사 양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에는 호흡치료사로 불리는 직종도, 교육훈련 과정과 자격제도도 없는 실정이다. 일부 대형 종합병원에서 호흡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