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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 승인…슬롯·운수권 반납 조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을 승인했다.

단 결합 후 뉴욕, 파리, 제주 등 일부 노선의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과 운수권(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을 다른 항공사에 이전하고 운임 인상은 제한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공정위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은 미국 등 6개국 경쟁 당국의 결론이 모두 나오면 이를 반영해 시정조치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결합일로부터 10년간 슬롯·운수권 반납 '구조적 조치' 부과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공정위는 두 회사의 결합을 승인하되, '거대 항공사' 탄생 시 운임 인상 등이 우려되는 노선에 대해서는 두 회사가 보유·사용 중인 슬롯과 운수권을 이전하는 '구조적 조치'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의 주식 취득을 완료하는 날(기업결합일)로부터 10년간 구조적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공정위는 우선 26개 국제노선과 8개 국내노선에 신규 항공사가 들어오거나 기존 항공사가 증편할 경우 두 회사가 가진 국내 공항(인천·김해·제주·김포공항) 슬롯을 의무적으로 공항 당국에 반납하도록 했다.

해당 국제노선은 서울∼뉴욕·로스앤젤레스·시애틀·호놀룰루·샌프란시스코·바르셀로나·프놈펜·팔라우·푸껫·괌, 부산∼칭다오·다낭·세부·나고야·괌 등이고, 국내 노선(편도 기준)은 제주∼청주·김포·광주·부산 등이다.

이 중 운항에 운수권이 필요한 11개 '항공 비(非)자유화 노선'은 신규 항공사가 진입하거나 기존 항공사가 증편할 때 두 회사가 사용 중인 운수권도 반납해야 한다.

서울∼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이스탄불·장자제·시안·선전·자카르타·시드니, 부산∼베이징 등 노선이 해당된다.

다만 반납할 슬롯·운수권 개수의 상한은 노선별로 점유율 기준에 따라 정하고, 구체적 이전 내용은 실제 신규 항공사의 진입 신청 시점에 공정위가 국토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또 전체 국제노선에 대해서는 신규 진입 항공사가 외국 공항 슬롯 이전·매각, 운임결합 협약 등의 체결, 국내 공항 각종 시설 이용 협력, 영공 통과 이용권 획득을 위한 협조를 요청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할 수 없도록 했다.

▲운임 인상 제한·마일리지 '소비자에 불리한 제도 변경' 금지

공정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단기간에 새 항공사 진입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구조적 조치가 완료되는 날까지 '행태적 조치'도 부과하기로 했다.

두 기업이 결합한 뒤 각 노선에 대한 운임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인상하는 것을 제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공급 좌석 수를 축소하는 것도 금지했고, 좌석 간격과 무료수하물 등 서비스 품질도 유지하도록 했다.

마일리지는 두 회사가 2019년 말 시행한 제도보다 불리하게 변경해선 안 되며 기업결합일로부터 6개월 안에 양사 통합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통합 방안은 공정위가 승인해야만 실행할 수 있다.

다만 제주∼울산·여수·진주 등 수요가 부족한 벽지 노선 6개에 대해서는 구조적 조치 없이 10년간 행태적 조치만 부과했다.

공정위는 구조적 조치가 이행될 때까지 항공 당국, 이행감독위원회와 협업해 행태적 조치의 이행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

▲ 119개 노선 중 서울∼뉴욕 등 40개서 '경쟁 제한' 우려

공정위는 두 회사와 계열사(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5개사가 결합할 경우 중첩되는 노선을 119개로 보고 각각의 경쟁 제한성을 분석했다.

119개 노선은 항공여객운송 국제선 65개, 항공여객운송 국내선 22개, 항공화물운송 국제선 20개, 항공화물운송 국내선 6개, 항공기 정비 등 기타 6개다.

그 결과 모두 40개 여객 노선(국제선 여객 26개, 국내선 여객 14개)에서 운임 인상 등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이 노선들은 두 회사가 결합하면 시장집중도가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두 회사에 대한 선호도가 모두 높아 소비자들이 이용 항공사를 다른 곳으로 바꾸는 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두 회사가 결합하면 유력 경쟁자가 사라져 운임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서울∼뉴욕 등 5개 미주 노선은 가격 인상률이 높고 다른 회사의 경유 편이 유효한 대체 수단이 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파리·로마·런던·프랑크푸르트·이스탄불·바르셀로나 등 6개 유럽노선 역시 독점이거나 경쟁 외항사의 점유율이 13∼31%에 그쳤다.

부산∼칭다오 등 5개 중국 노선, 6개 동남아 노선, 1개 일본 노선, 3개 대양주 등 노선도 경쟁 제한성이 인정됐다.

국내선(편도 기준)은 제주에서 내륙 지역을 오가는 노선 14개에서 경쟁 제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정위는 경쟁 제한 우려가 크더라도 기업결합을 예외적으로 인정해주는 '회생이 불가능한 회사와의 기업결합'인지 여부도 검토했지만,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아시아나가 정상적으로 채무를 변제하고 있어 지급불능 상태가 아니며, 대한항공보다 덜 경쟁 제한적인 대체 인수자를 찾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연합뉴스 제공]

▲ 6개국 심사 끝나면 조치안 확정…M&A 심사 법 개정 검토

이번 기업결합 건은 우리나라 첫 대형항공사(FSC) 간 결합이며 항공사 간 결합에 대해 구조적·행태적 시정조치를 종합적으로 부과한 최초 사례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항공업계의 경영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고 양사 통합에 따른 소비자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우리나라 항공운송 시장의 경쟁시스템이 유지·강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현재까지 태국 등 8개국의 심사가 끝났고, 미국, 영국, 호주, EU, 일본, 중국 등 6개국의 심사가 남아있다.

공정위는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 결과를 반영해 충돌하는 시정조치 내용을 보완·수정하고, 추후 전원회의를 열어 의결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해외 인수.합병(M&A) 심사 절차에서 참고할 점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상반기에 M&A 심사 법제에 대한 비교법적 검토 등 연구용역을 하고, 필요하면 법 개정안을 검토·마련할 계획이다.

고병희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경쟁 제한성 판단 부분과 시정조치안을 만드는 부분으로 심사제도를 단계화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라며 "동의의결 요소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