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6개월째에 접어든 가운데 러시아와 서방의 외교전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양상을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부터 닷새 일정으로 이집트와 콩고공화국, 우간다,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4개국 순방에 들어갔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전 세계적 식량위기를 서방의 탓으로 돌리면서 미국과 유럽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아프리카 정상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에 맞서는 서방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5∼28일 카메룬, 베냉, 기니비사우 등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한다. 이달 23일에는 서맨사 파워 미국 국제개발처장이 케냐를 찾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차단이 동아프리카 식량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전 세계적 대립에서 지금껏 한 쪽에 물러나 있던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투쟁이 격화하고 있다"고 25일 현 상황을 진단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심화하고 있는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더욱 강화해 활로를 찾고 반(反)서방 전선을 확장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의 성적은 러시아가 우세해 보인다.
라브로프 장관은 25일 콩고공화국에서 장 클로드 가코소 외교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우크라이나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으로 러시아가 올해 4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당할 당시 반대표를 던진 콩고공화국의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균형 있고 사려 깊은 태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에 가코소 외교장관은 자국의 드니 사수 응궤소 대통령이 옛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 지도자들과 교분을 가져왔다면서 양국의 오랜 외교 관계를 강조했다.
우간다 대통령실도 이날 "요웨리 카구타 무세베니 대통령이 특히 국방, 안보, 경제, 기술협력 분야에서 양자 관계를 강화하길 촉구했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우간다는 미국, 영국과 한때 가까운 관계였으나 1986년부터 36년간 우간다를 철권통치 중인 무세베니 대통령이 야권을 탄압하고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외면한 것을 계기로 관계가 소원해졌다.
무세베니 대통령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무후지 카이네루가바는 최근 트위터에 "(비백인) 인류 다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라브로프 장관의 이번 순방 마지막 방문국인 에티오피아도 북부 티그라이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과 인종청소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 때문에 서방과 관계가 순탄하지 못한 상황이다.
올해 3월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규탄과 즉각적 철군 요구를 담은 결의안이 141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을 당시에도 아프리카에선 무려 17개국이 기권표를 던졌다.
이는 기권표를 던진 국가 전체(35개국)의 절반에 해당한다. 반대표를 던진 5개국에도 북한, 러시아, 벨라루스, 시리아와 함께 아프리카 국가인 에리트레아가 포함됐다.
여기에는 옛 소련이 식민지배와 백인우월주의 정권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주민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면서 시작된 오랜 우호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면서 이로 인해 서방 당국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이 시작된 이래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적이 없으며 유럽 신제국주의자들에 맞서는 아프리카인들의 투쟁을 도왔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러시아는 아직도 아프리카에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하는 국가로 꼽힌다. 광산개발과 에너지 산업 등에 대한 투자도 활발한 편이며, 용병회사 '와그너 그룹'을 통해 필요한 국가에 무력을 빌려주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12억에 이르는 아프리카 대륙 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식량가격 상승으로 고통을 받는 현 상황은 아프리카 지도자 일부에겐 딜레마가 될 수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예컨대 세계 최대 밀 수입국 중 하나로 밀 수요의 80%가량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해 온 이집트는 러시아와 서방 우방 가운데 어느 쪽도 택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