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행위를 찬양·고무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적표현물을 소지·유포할 수 없도록 한 국가보안법 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8번째 합헌 판단을 받았다.
26일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적단체 가입을 처벌하는 3항 및 반국가단체를 규정한 제2조에 대한 헌법소원은 법률상 청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앞서 작년 9월15일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 등에 관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 대해 청구인들과 법무부, 학계의 입장을 들었다.
이적행위를 목적으로 한 표현물을 갖고 있거나 유포한 사람을 처벌하는 제7조 5항의 일부에 대해 재판관들의 위헌 의견이 늘어나는 가운데 논쟁도 치열했다.
청구인들은 국가보안법 제7조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양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며, 유엔 위원회 권고나 국제규약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며, 과거와 같이 오·남용되는 사례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반박했다.
◆ 국가보안법 제7조란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2항은 삭제됐으며, 3항은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4항은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5항은 '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6항은 '제1항 또는 제3항 내지 제5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고, 7항은 '제3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 1, 5항 두고 치열한 논쟁
이적행위를 찬양하거나 동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1항은 재판관 6대3으로 합헌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적행위를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5항의 경우, 구체적 행위별로 판단이 엇갈렸다.
5항 중 이적 표현물을 '제작·운반·반포한 자'를 처벌하는 부분은 재판관 6대3으로 합헌 결정을 받았다.
반면 표현물을 '소지·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부분은 재판관 4대5로 위헌 의견이 더 많았다. 다만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에는 미치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제7조 1항과 5항 모두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먼저 1항에 대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북한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체제 존립의 위협 역시 지속되고 있다"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아 온 국가보안법의 전통적 입장을 변경해야 할 만큼 북한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적표현물 조항에 대해서는 "전자매체 형태의 표현물은 소지·취득과 전파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고 전파 범위나 대상이 어디까지 이를지도 예측할 수 없다"며 "금지의 필요성이 종전보다 더욱 커졌다"고 했다.
반면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1항과 5항 모두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적행위 조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도 이를 처벌 대상에 포함시켜 대다수 시민의 정당한 의사 표현 내지 그 전제가 되는 양심과 사상의 형성을 위축시키고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또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인간 존엄과 가치 보장에 필수적"이라며, 해당 조항들이 이를 과하게 침해한다"고 했다.
유남석·정정미 재판관은 1항에 대해서는 합헌 의견을 냈고, 5항 중에서는 '소지·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서만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소지·취득 행위는 내심의 영역에서 양심을 형성하고 양심상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지식정보를 습득하거나 보관하는 행위"라며 "양심형성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속한다"고 했다.
이어 "국가 안전 확보 등 입법목적은 이적표현물의 유포·전파를 금지하고 처벌함으로써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며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