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박현주 회장, 희망 없는 시대에 남은 '샐러리맨 성공 신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희망이 없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이 야속해 청년들이 내뱉는 현실이다. 신입사원으로 취업해 임원까지 올라가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어려운 일이고, 창업을 해서 삼성이나 현대 같은 새로운 대기업을 세우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전문직 자격증 시험 등이지만, 그것마저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

가진 것 없어도 능력만으로 부자가 되는 '샐러리맨 신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24일, 미래에셋이 대우증권·산은자산운용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대우증권 보통주 1억4천48만1천383주(지분비율 43.00%)와 산은자산운용 보통주 777만8천956주(지분비율 100%)를 인수하게 되며, 미래에셋 경영자 박현주 회장의 '신화'가 재조명받고 있다.

그의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선 그의 성공신화를 엿볼 수 있다.

박현주 회장은 1958년 광주에서 꽤 부유한 중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던 날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해 삶의 회의를 느끼고 방황했다. 그탓에 고등학교를 거의 꼴등으로 졸업하고 재수 생활을 거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어렵게 입학한 대학이었지만, 그는 대학 시절 내내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였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선배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자, 찬조연설을 하는 등 도움을 주었는데, 후보 연설보다 훌륭한 연설을 해 화제가 되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턴 명동 증권가를 기웃거리며 주식투자를 했다. 1년 치 학비와 생활비를 투자 자금을 쓴 것이다. 증권가에선 젊은 청년이 놀라운 수익을 올리는 데다, 시장 예측도 잘해 유명인사로 여겼다.

대학을 졸업한 뒤엔 대학원에 진학하며, 당시 '투자 철학을 지닌 큰손'이라 불리던 백희엽 할머니의 사무실로 출근하고, 증권사나 기업체 방문 때 동행하기도 했다. 그녀는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하는 투자를 했는데,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기업이나, 내용이 좋은 기업 주식만 사 2~3년을 기다리다 시장이 흥분하면 그때 팔아 수익을 얻는 방식이었다. 그때 박 회장은 우량주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한다.

이어 아직 대학원생이던 1984년, 사설 투자자문사인 내외증권연구소를 설립해 회현동 코리아헤럴드 빌딩에 20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었고, 1986년엔 시장분석을 배우기 위해 무작정 동양증권에 찾아가 영업부에 입사했다. 입사 45일 만에 대리가 됐고, 같은 해 동원증권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1년엔 불과 33세의 나이에 지점장을 맡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1996년엔 강남본부장 이사가 되었다.

1997년 동원증권에서 퇴사한 뒤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했고, 1999년엔 미래에섯증권을 세웠다. 2001년부턴 그룹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야말로 신화라고밖에 할 수 없는 행보다. 현재 미래에셋은 자산운용회사, 보험회사, 캐피털회사 등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글로벌 금융그룹이 되었다. 코스닥 열풍이 몰아치기 전엔 일찍 벤처기업에 눈을 돌려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1998년도엔 국내 최초로 뮤추얼펀드를 도입해 주식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는 등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박 회장은  2011년과 2012년에 이어 2013년 6월 배당금 전액인 34억3000만 원을 기부하고, 주력 회사 주식의 20%를 직원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2012년 한 해에만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한 금액은 약 85억 6000만원에 달하며, 미래에셋 전 임원들은 매달 급여의 '1%'를 기부하는 '미래에셋 1% 희망나눔'에 동참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좌절의 시기가 있었다. 지난 2007년 시중 자금을 싹쓸이하며 펀드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인사이트펀드가 '중국 몰빵 투자' 논란 속에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박현주'라는 브랜드를 믿고 '묻지 마 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원금이 반토막 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단시일에 업계 1,2위를 다투는 입지를 굳힌 것과 달리 미래에셋증권은 장기간 '정체'에 빠지며 규모나 수익성 면에서 선두권 진입이 좌절돼 온 것도 박 회장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하지만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미래에셋증권은 압도적인 업계 1위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일본 노무라를 뛰어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미래에셋을 키우겠다."는 그의 다짐이 새로운 신화를 이끌어낼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