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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은시스템 김승남 회장, "위기를 열정으로 극복하라"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경제의 희망을 찾는 기획인터뷰 그 3번째 순서로 본지는 보안전문업체 조은시스템과 잡코리아를 만든 김승남(67)<사진> 회장을 만나 그의 삶과 철학을 들어 봤다.

예비역 중령 출신인 김 회장은 50대 중반인 14년 전, 직원 4명으로 시작해 현재 4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연 매출 1500억원의 시스템 경비보안업체 조은시스템을 경영하고 있다. 또 국내 최대 취업포털 잡코리아를 창업한 대표적인 크리스천 경영자다.

다음은 위기를 열정으로 극복한 희망 전도사, 김승남 회장과의 일문일답. 

Q: 이력을 보니 매우 특이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 사업하시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가? 

육군에서 직업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그 당시가 5.16군사혁명이 일어난 직후인데 3년 의무복무를 하고 전역할 생각으로 간부후보생으로 입대하였는데 월남전이 일어나고 나도 갑자기 월남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계속 복무를 하게 되었다. 군에서는 보병병과였고 작전분야에서 근무를 했다. 또 대대, 연대, 사단의 작전참모를 했었고 지휘관으로는 소대장으로부터 동원연대장까지 역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군인으로 열정을 다한 21년이다. 불운하게도 5.18직전에 광주지역을 담당하는 동원연대장을 끝으로 사랑하는 군을 떠났고 전역 후 충북은행에 들어가 안전관리실장, 조사부장을 거친 다음 신설된 지방보험사에 법인영업부장으로 입사해 이사, 상무이사를 역임하고 50대 중반에 시큐리티 전문회사인 조은시스템과 조은세이프를 창업했다. 이후에 인터넷 구인구직 회사인 잡코리아 등을 창업했다. 우연히 후배의 도움으로 사업에 뛰어든 이후 정신 없이 달려와 오늘에 이르게 됐다.

Q: 군대 전역하시고 사업하기 전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전역 직후에 무척 힘든 시절이 있었다. 군에 있을 때 친지의 재정보증을 해준 일이 있었는데 부도가 나는 바람에 경제적 파산 상황에 몰리게 됐다. 생활 자체도 어려웠지만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큰 과제였다.

중학에 막 입학한 큰 아이와 1년 터울의 세 남매에 대한 교육 문제가 난감한 여건이었는데 경제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보증을 서준 모든 빚을 정리하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아이들이 모두 잘 성장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역하고 취직 보다는 장사를 할 생각이었다. 대관령 고랭지 채소를 서울에 가져다 파는 채소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보증 건으로 다섯 가족의 생존이 중요하다고 보고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Q: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진단한다면. 

우리사회는 아직까지는 아름답고 정이 넘치는 사회로 한국전쟁 이후 일치단결하여 오늘의 번영을 이룬 위대한 사람들이 이룬 역동적인 사회다.

하지만 지금 한 부분이 병들기 시작했다. 즉 양분화라는 병이 고질병이 되는 단계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 된다. 지역 간의 갈등, 계층 간의 위화감, 민족통일을 향한 이념의 편차 같은 것들이 우리 모두가 걱정을 하고 있는 양분화 된 병든 사회가 아닐까? 문제는 대부분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계신 분들이 양분화를 치유하겠다는 사람보다는 한쪽에 가담하여 골을 더 깊게 하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나는 2년 전 작은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10년 이내에 유한재단 규모가 목표인데 아직 내세울 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사회를 밝게 변화시키는 일을 후원하려고 한다. 우리사회에는 많은 미담, 장점이 있고 각 분야에서 성공하고 좋은 영향을 끼친 존경하는 분들이 많다. 영웅도 우리가 만들어 받들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을 찾아서 성원하고 싶다.

현재 명지대에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박정희대통령 연구를 후원하고 있고 군•경찰 문화 등 우리가 사랑해야 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문제를 고민하여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동산투기, 대박을 꿈꾸는 한탕주의를 사회시스템으로 통제하고 건전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성공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 정치부문이 조금 더 분발하여 뒷받침했으면 좋겠다.

Q: 오늘 날의 본인이 성공한 리더가 된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직 성공한 리더라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재작년에 한 신문사에서 “고맙습니다”라는 이름으로 자전적 경영 에세이를 책으로 냈는데, “당신은 50대 중반에 직원 4명으로 창업하여 4천 여명 규모의 보안회사로 키웠다. 그리고 당신은 직업군인출신으로 IT회사들을 창업하여 중견기업으로 성장 시켰다. 40대에 파산하고도 재기하였으니 비법이 뭐냐? 글로 써라” 해서 정리를 했다. 이 글의 결론이랄까 가장 중요한 답은 “나 주변의 여러분께서 따뜻한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작은 성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굳이 나만의 방식을 말한다면 나는 두 개의 지주가 있었다. 하나는 '미치광이'로 살았고 다른 하나는 ‘삼다(三多)’를 삶의 지표로 삼고 사랑했다.

미치광이로는 얼마 동안 컴퓨터에 미친 시절이 있었고 인터넷에 미쳤었어요. 지난 몇 년간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에 미쳐있었고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인류학 같은 학문에도 미쳐 보고 싶다.

삼다(三多)는 많이 일하고 노력하는 다노(多勞), 책 많이 읽고 공부하는 다학(多學), 그리고 무엇이든 많이 주는 다시(多施)인데 삶의 지표로 삼았는데, 앞으로 도 노력할 것이다.  

Q: 글로벌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미국에 대한 인식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미국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있다면?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어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인하여 세계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었는데 경제 상황에 대한 문제는 주제 넘는 일이어서 삼가 하고 싶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호적이다.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미국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이름 모를 산하에서 목숨을 바쳐 한국을 도왔다. 경제발전 과정에 미국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고 지금도 이역만리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의 안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전쟁억지력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물론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을 지원하겠지만 우리는 미국의 도움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 우리도 언젠가 평화적으로 국토통일을 이루고 민족 번영의 기회를 갖게 되면 미국의 역할에 다시 감사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한미 FTA가 체결되고 미국의 금융위기가 해소되면 미국은 한국의 큰 시장으로 우리의 경제발전에 좋은 파트너가 되리라 생각된다. 

Q: 한국 PTPI 총재인데 이 단체에 대한 소개를 한다면? 

국제피플투피플(PTPI)의 이념은 상호이해를 통한 국제평화 증진으로 이 단체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창하여 설립되었는데 48개국에 네트워크가 이루어진 국제봉사단체다. 난는 한국본부 총재로 봉사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32개 챕터와 28개의 학생동아리가 아름다운 봉사를 하고 있다. 금년에도 각각 10개 정도씩의 챕터를 더 만들어 봉사와 헌신을 위한 영역을 확장 중에 있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가정, 주한 유엔군을 따뜻이 후원하고 한국 문화를 소개하며 체육행사, 한국어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회원은 사회각계 각층의 사업가, 직장인, 공무원, 문화예술인, 교수, 의료인력, 법률가를 비롯해 가정주부에 이르기 까지 국제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하고 있다.

Q: 다민족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를 향한 고언이 있다면.

이제 점점 다민족 사회, 다문화 가정이 이해되고 보편화된 우리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편견이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가깝게 지내는 미국사람을 만났는데 한국부인과 좋은 가정을 이루고 있는 한국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데 다민족 얘기가 나왔다. 그는 한국인들의 이민족에 대한 깊은 편견을 바꾸었으면 더 밝은 사회가 될 텐데 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우리도 충분히 다문화 사회를 수용할 단계에 왔다고 했더니 그는 ‘한국에서 타이거우즈나 오바마가 언제쯤 나올 거 같으냐?‘고 물었다… 이제 세계가 한 지붕에서 산다는 성숙된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Q: 꿈이 있다면 무엇이며 젊은이들을 위해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늦게 사업을 시작한 나는 도전을 즐겼다고 할까? 이 시점에서 젊은이들에게 도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그리고 도전을 하면 변화가 이루어지지요. 변화의 과정을 사랑한다는 자체가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IBM노트북이 나온 첫 날, 난 월급의 3배를 주고 그것을 구입했다. 그때의 설램을 안고 살아가는 나에게는 항상 '10년 후의 나는?'이라는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모두를 이룰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최선을 다하였고 그 성과는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겸손한 믿음이 더 돋보이지 않겠는가? 최선을 다하고도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면 정성이 부족하였든지, 힘이 모자랐던지 어떤 연유이든 간에 담백하게 받아 드리고 기다리면 언젠가 기회가 다시 오리라 믿는다.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승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승리도 있다. 주어진 여건에서 작더라도 가능한 만큼의 사랑, 봉사, 헌신의 삶을 사는 많은 이웃을 바라 보라. 그것이 진정한 승리자다. 흔히 말하는 관직, 명예, 재산은 가치 있게 활용되었을 때 더욱 빛나는 것이며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활용된다면 가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에서 기업인들이 존경 받는 경우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도 좋은 기업인들의 선행을 이룬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모두들 아직 부족함을 느낀다. 이제는 우리사회가 인생의 중요한 가치 “Men for others"라는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실행할까?”하는 명제를 사랑하기를 기원한다.

김승남 회장은 인터뷰가 끝나고 자신의 꿈에 대해 “내 꿈은 언젠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단 한번이라도 이루는 것이다”면서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내가 창업한 기업들이 사회에서 존경 받고 사랑 받는 좋은 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또 김 회장은 “죽으면 몸은 연구용으로 사용한다며 이것도 축복이다”며 자신의 몸을 연구용으로 기증할 뜻도 밝히며 “우리집의 세 아이들이 좋은 뜻을 성취해 아버지가 못 이룬 꿈을 대를 이어서 이룬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 되겠냐?”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