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공식 결별한 GM대우와 대우자동차판매 사태가 공정위 제소 등 법적 분쟁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대우자판이 이번 계약 해지를 들어 공정위 제소를 포함해 법적 조치를 강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자판 관계자는 10일 “(이번 건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만간 공정위 제소를 포함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공정위가 지난 1월6일 대우자판 비대위의 제소 건을 조사 중이어서 이번 일방적 계약해지 건이 포함될 경우 사태는 감정싸움을 넘어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높다.
앞서 GM대우의 지역총판제는 공정거래법 위반 논란을 불렀었다. 지난해 7월 16일 대우자판은 “국내 판매망을 지역별로 분할, 각각 딜러에게 준다면 공정거래법상의 판매권 제한이라는 불공정거래 요소에 해당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란은 그해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당시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의 불공정 거래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GM대우의 지역총판제 체결은) 부당한 거래거절 유형에 포함될 수 있다”면서 “사실을 파악해서 위법성이 인정되는지 조사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대우차판매 비대위는 지난 1월 6일 공정위에 GM대우를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제소하게 된다.
비대위는 “GM대우가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전국의 절반 지역에 해당하는 거래를 일방적으로 거절했다”며 “대우차판매가 운영 중인 물류사업을 포기하고 GM대우가 운영하는 물류사업과 거래토록 한 것은 공정거래법상 지위를 남용한 거래 행위로 불이익 제공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GM대우, “공정위 제소건 상황 지켜봐야”
이번에 GM대우가 또 다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함에 따라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지수다. 공정위도 현재 제소 건을 조사 중이라고 밝히고 있어 이번 건이 포함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10일 “현재 조사 중인 것은 맞지만 진행 상황 등을 이야기 해 줄 수는 없다”며 “신고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법령에 위반될 경우 거기에 따라 적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GM대우 관계자는 “지난 1월 대우자판과 산하 대리점을 포함해 총판계약 사인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이번에 다시 계약이 해지된 만큼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우자판 관계자는 “지난 1월 6일 공정위 제소건과 달리 이번에는 말도 안 되는 돈 문제를 들고 나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 했다”며 “조만간 공정위 제소를 포함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총판제와 시보레 브랜드 도입에 대한 부정적 전망도 있다. 내수 판매 신장을 위한 핵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수 부진의 근본 원인이 제품 경쟁력 저하와 한국 실상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짜지 못했기 때문인데, 판매망 변경과 시보레 브랜드 도입을 경쟁력 강화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다.
◇결별 이유는 피보다 진한 ‘돈’ 때문
두 회사가 결별하게 된 궁극적 이유는 자동차 판매를 둘러싼 대금지급 때문이다. 2003년부터 사실상 한 솥밥을 먹어온 GM대우와 대우자판이 7년 만에 완전히 갈라서게 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대우자판 관계자는 10일 “양사의 계약 사항에 중대한 결격사유가 발생했다는 것은 지난 2월부터 시작된 판매 대금 납부 지연을 일컫는 것”이라며 “지난해 12월부터 대금 납부가 지연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결별을 선언한 마당에 더 이상 무엇을 숨기겠냐”며 “지역총판제 확대 정착을 위해 대우자판을 몰아내려고 일부러 돈 문제를 끄집어 낸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GM대우 관계자 역시 “상대편이 돈 문제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맞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우자판이 약속된 대금지급 날짜를 수차례 어겼다고 한다.
결국 계약상 결별의 중대한 사유가 자동차 판매 확대를 둘러싼 다툼 끝에 대금 문제로 번지며 계약 해지로 귀결된 것이다. 그동안 대우자판에 기대온 GM대우가 대우자판의 판매 방식이나 판매량에 불만을 가졌다가 기회를 잡고 공식 ‘이혼’을 선언한 셈이다.
이미 GM은 작년 3월부터 GM대우의 한국 내수판매 확대를 위해 전략 수립에 나섰었다. 수출부진 피해를 내수로 막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지난 1월 18일 도입한 ‘지역총판제’와 오는 5월께로 예정된 ‘시보레 브랜드 도입’이 그것이다.
지역총판제는 기존 대우자판이 가지고 있던 전국 8곳의 내수 판매권을 딜러에게 넘겨 지역 간 경쟁을 유발해 내수를 늘리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시작은 다소 주춤했지만 두 달여를 넘긴 현 시점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게 GM대우의 주장이다.
GM대우 관계자는 “1월 지역총판제 도입 이후 일일 출고대수가 대우자판 시절 220대 수준에서 520여대로 2.36배가량 늘었다”며 “전체 내수 판매량도 지난해 1~2월 1만2868대였는데 올해 1~2월에는 1만7210대로 33.7%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지역 총판제 도입 이후 판매량이 오히려 늘고 있어 대우자판 독점 시대보다 내수 진작 효과가 크다는 말이다.
오는 5월 시보레 브랜드 도입도 내수 진작 효과를 노린 측면이 크다. 다수의 GM대우 출고 고객들이 추가 비용까지 감수하면서 시보레 브랜드로 바꿔 출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GM대우는 올해 내수 점유율을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올릴 방침이다. GM대우는 지난해 내수 점유율이 7.9%(11만4845대)로 쌍용차 바로 위인 업계 4위였다.
하지만 대우자판 관계자는 “총판제를 1월 2일 하려다 지역 대리점과 관계 정리가 안 돼 미뤄지면서 출고가 원활하지 않았다. 18일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본격 출범하면서 한꺼번에 적체된 물량이 쏟아지면서 판매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는 단란했던 ‘사촌지간’이 원수로
사실 지난해 6월 초까지 두 회사는 밀어주고 끌어주며 국내 시장 판매에 한 목소리를 냈었다. 당시 미국 GM의 파산보호 신청 후 재편되는 ‘뉴 GM’에 GM대우 등 국내 GM관련 회사들이 편입되자 “정상적인 사업 진행이 가능하게 됐다”며 안도했다.
마이클 그리말디 전임 GM대우 사장도 6월 2일 ‘뉴 GM’ 편입 확인 이후 “국내에서 대우자판 등과 협의해 영업망을 더 강화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우자판 관계자 역시 “GM대우가 ‘뉴 GM’에 소속되는 만큼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들어 판매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장밋빛 미래를 예상했다.
하지만 이들의 밀월 관계는 얼마 가지 못했다. ‘뉴 GM’ 편입으로 안도의 한 숨을 쉰지 한 달가량 지난 7월 초 GM대우가 ‘책임지역총판제’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GM대우는 ‘대한·삼화·아주 모터스’와 지역총판사 MOU를 체결하고, 두 달 뒤인 9월 초 본 계약을 했다. 이미 GM대우는 6월말께부터 대우자판 측에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한 달 새 상황이 뒤집어진 것이다. 당시 GM대우 측에서는 “한국처럼 한 곳의 회사가 내수 판매망 전체를 관리하고 판매하는 그런 예는 없다”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 지역 딜러들이 판매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당시 언론에도 보도됐던 GM대우가 작성한 ‘복합 대리점 전략(Multi Retailer Strategy)’ 문건에도 대우자판의 유동성 위기가 GM대우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재무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총판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하지만 대우자판은 당시 “GM대우의 제품 구성이나 브랜드 파워를 감안할 때 단순히 딜러만 증가시킨다고 시장 점유율이 획기적으로 증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맹비난했다.
그러나 지난 1월 18일 전국 대리점 영업계약을 모두 완료한 GM대우는 책임지역총판제를 본격 가동하기에 이른다. GM대우와 대우자판은 이로서 ‘요단강’을 건넌 셈이다.
마이크 아카몬 사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수많은 시간을 파트너십에 대해 심사숙고했고 결정을 했다”며 “내수시장에서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한 좋은 결정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GM대우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고 번복하기 불가능한 결정”이라며 “고객들에게 책임지역 총판제를 통해 차를 판매하는 게 났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편 대우자판은 10일 계약 해지와 관련한 공식 입장자료를 내 “7년 이상 유지해 온 사업관계에 대해 일방적으로 관계단절을 선언하는 GM식 상도의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GM대우의 태도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그간 신 모델 투자를 늘리겠다는 GM대우만 믿고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를 지속했으며, GM대우 부문에서 약 2000~3000억 정도의 손실을 부담했다”며 “그런 사업파트너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일방적인 관계 단절 통보라는 사실에 심각한 배반감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