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대주주 일가가 편법 상속 및 증여 의혹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태광그룹은 석유화학과 섬유를 기반으로 5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재계 서열 40위권의 중견기업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호진 태광그룹(48) 회장이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인 외아들 이현준(16)에게 비상장 주요 계열사 지분을 헐값으로 한꺼번에 넘겼다는 것이다.
17일 태광그룹 소액주주인 투자회사 서울인베스트의 박윤배(53) 대표는 "전형적인 재벌의 편법 상속, 증여 수법과 똑같다"며 "이호진 회장이 회사 자산을 아들이 지배하고 있는 비상장사에 편법적으로 이전해 태광그룹을 소유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재편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저가 신주를 발행해 2세에게 넘기는 방식과 계열사들이 핵심 기업에 매출을 몰아주는 방식 둘을 합친 새로운 형태의 세습이다"며 "본질가치가 4~5조원에 달하는 태광그룹의 시장평가 가치는 1조2000억원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세습의 수단은 티시스(구 태광시스템즈)와 티알엠(구 태광리얼코), 한국도서보급 등 3개 비상장 주요 계열사다. 이 회장이 지분의 51%, 현준 군은 49%를 갖고 있는 사실상 개인회사다.
우선 티시스는 이호진 회장이 100%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2006년 3자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현준 군이 49%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유상증자 금액은 1억8200만원으로, 이 유상증자가 자금조달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적은 금액이다"며 "이는 아들에게 저가에 주식을 발행해 보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에 따라 주식평가액을 계산하면 주당 20만4939원으로 평가된다.
2004년 주당순이익은 2만4531원, 2005년 주당순이익은 3만3563원이다. 따라서, 가중평균 주당순이익은 2만9950원이 된다. 자본환원율 10%를 적용한 주당 순손익가치는 29만9502원. 2005년 주당 순자산가치는 6만3094원이므로, 1주당 가액은 20만4939원인 것이다.
하지만 태광시스템즈는 2006년 1월 유상증자에서 무려 10배 이상 저가인 주당 1만8955원에 9600주를 이현준에게 배정했다.
현준 군은 같은 해인 2006년 2월, 티알엠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지분 49%의 2대주주가 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티알엠은 운영자금 명목으로 8599만6800원을 증자했으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던 이호진 회장이 고의 실권해 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3자배정 형태로 아들에게 편법 상속을 한 점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국도서보급의 경우는 계열사 한빛기남방송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이호진 회장과 현준 군이 저가에 매입, 계열사에게는 손실을 입히고 이익을 편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02년 12월 말, 한국도서보급의 보통주는 20만주가 발행되어 있었다.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 등이 55.5%, 두산이 1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후 2003년 한빛아이앤비의 자회사인 한빛기남방송과 한빛전주방송이 총 발행주식수의 92%인 18만4000주를 주당 1만6660원에 매입했었다.
2004년 6월29일 한빛전주방송은 보유 중이던 주식 17%를 주당 1만6660원에 한빛기남방송에 매각했고, 한빛기남방송은 기존 보유지분 75%에다 한빛전주방송 지분 17%를 인수해 총 지분 92%의 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2005년 11월8일 이호진 회장과 현준 군이 한빛기남방송과 기타 주주로부터 주식 95%를 2004년 매각시와 동일한 단가인 주당 1만6660원에 인수했다. 2006년에는 기타 주주로부터 나머지 지분 5%도 매입했다.
한국도서보급은 한빛기남방송이 두산 등으로부터 한국도서보급 주식을 매입한 2003년의 직전 회계연도인 2002년 말 총 자산이 306억4100만원으로 23억5800만원의 자본잠식상태였다.
또한 이호진 회장이 주식을 매입한 2005년의 직전 회계연도인 2004년의 경우, 총 자산은 258억9600만원, 순자산은 -41억2700만원이었다. 매출액은 19억2300만원, 당기순손실 3억4500만원의 부실한 회사였다.
하지만 2005년 8월1일 한국도서보급은 한국게임산업개발원으로부터 업계 1위의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경품용 상품권 발행사 지정은 말 그대로 돈방석 보증수표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로부터 3개월 후인 2005년 11월, 이 회장과 아들은 한국도서보급의 주식을 한빛기남방송이 지분을 매입한 가격과 동일한 가격으로 매입한 것이다.
상품권 발행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이 회장은 한국도서보급으로 하여금 흥국증권중개(전 피데스증권중개)에 총 147억원을 출자케 해 태광그룹이 역점을 두고 있는 한 축인 금융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와 함께 티브로드네트워크, 태광시스템즈, 전주반도유선방송 등 태광그룹 소규모 케이블방송 계열사들에게 대출을 해줬다.
이 회장이 매입한 주당 1만6660원은 한국도서보급의 기업가치를 33억3000만원에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2005년 11월17일 당시 한국도서보급은 이미 2004년의 자본잠식 상태에서 탈피해 상품권 영업개시 100여일 만에 이미 100억원이 넘는 매출과 5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연 환산 시 656억원의 매출액과 297억원의 순이익이다.
2005년 매출액은 157억원, 당기순이익은 71억원으로 주당순이익은 3만5666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실적호조로 회사는 2004년의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났으며, 주당 순자산은 1만5029원으로 증가했다.
결국 그는 회사가 경품용 상품권 업체 지정 후 이로 인해 회사의 경영실적이 급속도로 호전되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 주식을 저가에 계열사로부터 매입한 것이다.
한국도서보급의 2005년 말 기준 주당순이익은 3만5666원이었고 상품권 영업을 1년간 영위했다고 가정한 환산 주당순이익은 무려 15만원에 육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2005년 8월1일부터 2006년 7월31일까지 1년 동안 9920만장의 상품권을 발행해 총발행액이 4조5460억원에 이르렀던 것으로 안다"며 "장당 20~30원의 수익이 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도서보급은 무려 200억원에서 300억원의 순수익을 남겼을 것이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도서보급의 비상장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2005년 11월18일 이 회장의 인수 당시 33억원의 기업가치평가금액은 현저한 저가다"고 설명했다. 한빛기남방송이 누려야 할 이익을 지배주주 일가가 편취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2006년 이 회장과 현준 군은 한국도서보급 주식을 추가 매입하는 과정에서 영풍문고가 가지고 있던 주식 2000주를 매입하기 위해, 매입가격으로 주당 1만6660원을 제시하고 이와 별도로 협찬비 명목으로 5000원 상당 도서문화상품권 7015장을 제공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한국도서보급 사장이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 회장이 제시한 매입가격 1만6660원과 도서문화상품권 비용을 더하면, 실제 매입가격은 주당 3만3320원이다. 한빛기남방송과의 거래단가 1만6660원이 현저한 저가임을 입증한 셈이다.
또한 당시 이호진 회장은 한빛기남방송의 이사로 재직했었다. 자신이 이사로 있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회사의 주식을 저가에 매입한 것은 한빛기남방송에 대한 배임행위이기도 했다.
한편, 최근 흥국증권중개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한국도서보급의 지분율이 점차 희석되고, 이호진 회장의 지분율이 증가했다.
흥국증권중개는 2006년 4월 한국도서보급이 자본금 33억원을 출자해 설립됐으며, 발행주식 총수는 66만주였다. 2009년 3월 유상증자로 자본금이 100억원, 주식수는 200만주로 늘었고, 올해 3월에는 자본금이 220억원, 주식수는 440만주가 됐다. 이때 이 회장은 지분 54.55%를 배정받았다.
또한 한 달 후에는 자본금이 320억원, 주식수는 640만주가 되고 이 회장의 지분율은 68.75%로 올랐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 관계자는 "비상장사라 현재 이 회장이 68.75%를 전량 보유하고 있는지, 아들 현준 군이 유증 참여를 통해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정황 상 아들에게 유증을 통한 상속을 진행 중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