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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기업 경영 최대변수는 '유럽·환율·총선·대선'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상장 대기업들은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북한 변수보다 유럽 재정위기를 더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환율변동, 향후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할 총선과 대선도 중요한 변수로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기는 했지만 북한 리스크는 당장 현실화되지 않는 잠복된 변수로 여기고 있었다. 

이런 인식 하에서 대기업들은 당장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으며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 리스크보다는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위험인 유럽 재정위기, 환율변동, 선거 등을 놓고 내년 사업계획 짜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북한 리스크가 위기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내년 경영에 최대 변수

시가총액 상위 20대 상장사들은 모두 내년 경영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북한 리스크가 아닌 유럽 재정위기라고 20일 밝혔다.

김정일 사망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지만 대기업들은 사태가 더 악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는데다 지정학적 위험은 전개 방향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내년 경영 변수로서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북한 변수는 내년 경영계획을 짤 때 우선적인 고려대상이 아니며, 그보다는 유럽 재정위기 시나리오에 따라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며 "최대 수출시장인 유럽이 위기상황이어서 내년 수익성에 걱정이 많다. 올해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도 "북한 변수가 당장 기업에 직접 미칠 영향은 없을 것 같다"며 "유럽 경제불안이 가장 큰 불확실성이며, 이런 것이 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다"고 설명했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원은 "북한 정세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기 어렵다. 내용이 확실하지 않고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여서 기업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현재 세계 경기를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어 수출 위주인 대기업의 수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유럽의 재정위기는 가장 중요한 리스크로 여기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대외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로서는 수출 시장 악화가 더 확실한 어려움이어서 체감도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재정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유럽 시장의 수요가 더욱 위축돼 수출 위주인 국내 대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수출 비중이 큰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수출 비중이 90%여서 유럽 경기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고, 대외 악재에 민감한 금융업종의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도 "북한보다 유럽 재정위기가 더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윤기 실장은 "북한 리스크가 경제 외적인 요인이라면 유럽 재정위기와 환율은 기업의 채산성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문제다. 기업들은 당연히 불확실한 지정학적 위험보다는 경제 변수에 집중해서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 환율, 내년 경영 성적 좌우 중요 변수

대기업들은 환율도 내년 경영 성적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로 여기고 있었다. 환율은 수출ㆍ내수 기업을 가리지 않고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 확산 등으로 외국계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 원ㆍ달러 환율이 오를 수 있다. 북한 리스크도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환율에 가장 신경 쓴다. 특히, 유로존 위기에 따른 환율 변동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북한 변수가 환율에 영향을 미칠까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 포스코 관계자는 "경제의 전반적인 흐름과 함께 환율 변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고, LG전자 관계자도 "환율 변동이 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과 S-Oil 등 정유사들을 비롯해 원자재 수입 물량이 많은 기업의 실적에 환율은 큰 영향을 미친다. 내수 중심 기업에도 환율은 부담스러운 변수다. 환율이 오르면 물가가 상승하고 외화 부채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원화 약세는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구매력을 떨어뜨려 내수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수출 기업들에게는 환율의 방향보다 불확실성이 가중될 때 나타나는 변동성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하나대투증권 양경식 투자전략부 이사는 "환율이 오르면 달러 부채가 많은 기업은 부담스럽고 수출 기업은 원자재 수입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의 신인도에 부정적이다"라고 분석했다.

◇총선ㆍ대선도 중요 변수

내년에 치러지는 총선(4월)과 대선(12월)은 경제정책 방향에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기업이 중요한 변수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앞다퉈 반(反)기업적 공약을 내놓을 가능성에 대해 기업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내년 선거 담론이 포퓰리즘 일색으로 흐를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선거 공약으로 재정지출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윤기 실장은 "기업들은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영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선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北 리스크 평가절하 안돼… 북한 정세 주의 깊게 살펴야"

이런 가운데 상위 20대 상장사 중 북한 변수가 내년 사업계획에 주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한 상장사는 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내부 권력승계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체제전복 시도나 내부 쿠데타 등이 일어날 경우 한반도 상황은 급변할 수 있어, 전문가들은 북한 문제를 무조건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면 투자와 소비가 크게 위축돼 기업이익에도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기업들도 앞으로 북한 정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하나대투증권의 양경식 이사는 "앞으로 북한상황의 전개 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후계자인 김정은의 나이가 어려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자칫 권력 다툼이나 알력이 생기는 불확실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오성진 리서치센터장은 "북한에서 체제전복이나 내부 쿠데타 등의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급변사태를 고려하지 않은 기업들은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