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태훈 기자] 대한민국은 아직 금융 신뢰성에 있어 투명하지 않은 '금융 후진국'이다.
최근 불완전 판매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금융사가 고객들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고객센터(콜센터)에서부터 정보공개를 꺼리는 풍조가 사라져야 한다. 이에 한술 더 떠 국내 보험사에서 지난달 말일께 '이중출금' 사건이 터져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회사원 A(52)씨는 얼마전 글로벌 보험기업 시그나(Cigna)의 한국법인 '라이나 생명보험(대표이사 홍봉성, 이하 라이나 생명)'의 보험상품에 가입한 이후 보험료가 통장에서 이중출금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앞서 라이나 생명은 2011년 포춘코리아와 서울대학교 경영연구소가 매년 공동으로 선발하는 'FORTUNE KOREA 500 초고속성장기업'에 선정된 바 있다.
A씨는 한화증권 'Smart CMA' 급여통장을 개설하고 해당 증권사 요청대로 시중의 우리은행 가상계좌에서 매달 돈(보험료)이 빠져나가도록 조치했다. 그는 또 라이나 생명에서 가족들을 위해 정기·건강보험 상품을 가입신청하고 해당 급여통장에서 보험료가 빠져나가도록 했다.
그에 따르면, 생보사 측에서 '가입한 첫 회는 무조건 보험료 자동이체를 해야 가입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더라는 것이다.
보험료는 보험계약자(보험가입자)가 수혜를 보는 보험금과 달리 계약자 본인이 보험계약에 따른 보장을 받기 위해 매월 정기적으로 보험사 측에 납입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한국이 금융 후진국인 이유는 이제부터다.
A씨가 추후 확인해보니, 생보사 측에서 보험료 납부일 전날 토요일이 껴 그의 보험을 '보험료 미납'으로 처리해버린 결과 통장에서 생보사와 은행에서 두 번이나 인출됐다는 것.
그는 결국 보험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보험계약 시 이미 은행에서 자동이체하게 해놨다"며 "(이중출금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면 차라리) 보험료를 은행 측에 요청하지 말고 보험사에서 즉시 빼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이에 고객센터 상담원은 "(A씨 같은 경우) 이중출금 된다"는 답변만 늘어 놓더라는 것.
이어 그녀는 "보험사에는 원래 입출금 시스템이 없어서 보험료가 제휴 상태이므로 보험료 인출 잔액이 남았을 때는 은행 시스템에서 다음날까지 '미납상태'로 잡힌다"면서 "다음날은 은행 측에서도 이중출금된다"고 당연하다는 듯 강변했다. 그 뜻은 보험료 납입의 명목으로 잔액이 남아 있을 때까지 자동출금이 돼버릴 수 있는 것.
그는 이달 2일 오후 8시경 <재경일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에 대해 "내가 해당 이중출금 사태를 겪고 나서 제일 처음 항의했을 때 생보사 고객센터 실장은 화를 내면서 '환급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며 "그러나 내가 한참 항의를 하고 나서 '라이나 생명 이중출금 사건을 언론사에 제보하겠다'고 하니, 그제야 '다음달 환급해 드리겠다'고 무마하려 들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그는 "그래서 혹시나 해서 (해당 사건이 있은 후) 지난달 29·30일 양 일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동일 소비자 피해 신고글이 상당히 많더라"며 "이것은 생보사 어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보험업계 전반에 걸쳐 이미 만연돼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생보업계 보험사고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이같은 이중출금 문제는 보험사 측 보험료 납입 시스템이 소비자가 아닌 보험사 위주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에 <재경일보> 기자가 A씨로부터 생명보험 이중출금 사건에 대한 첩보를 단독 입수하고 직접 라이나 생명보험社 홈페이지를 통해 보험상품 약관을 전부 내려받아 추적한 결과, 해당 분쟁과 관련된 규정은 '제2관 보험료의 납입(계약자의 주된 의무)' 규정으로 회사의 입장에서만 쓰여져 보험계약자와 보험사 간의 이중출금문제 발생 시 전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없게 돼 있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자동이체'에 대한 조항은 제2관 10조 '제1회 보험료 및 회사의 보장개시일' 하나로, '회사는 계약의 청약을 승낙하고 제1회 보험료를 받은 때(자동이체납입 및 신용카드납입의 경우에는 자동이체신청 및 신용카드매출승인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때, 다만 계약자의 귀책사유로 보험료납입 및 승인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합니다) 부터 이 약관이 정한 바에 따라 보장을 합니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약관 내 관련 규정이 아예 빠져 있는 실정이었다.
이와 더불어 제2관 11조 '제2회 이후 보험료의 납입' 규정도 "계약자는 제2회 이후의 보험료를 계약 체결시 납입하기로 약속한 날까지 납입하여야 하며, 회사는 계약자가 보험료를 납입한 경우에는 영수증을 발행하여 드립니다. 다만, 금융회사를 통하여 보험료를 납입한 경우에는 그 금융회사 발행 증빙서류를 영수증으로 대신합니다"라고만 표기해놔 보험료 1회차 납입 이후에도 보험계약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이중출금에 대한 사측의 대처가 미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약관 후반부 '제6관 분쟁조정 등'에서는 분쟁 발생 시 금융감독원장에게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만 명기돼 있고, 일반 금융사 고객 약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준거법 규정(41조)' 및 '예금자보호법 관계 규정(42조)'만 명시해놓고 있는 형편이라 지금과 같은 분쟁이 터졌을 때 사측의 적극적 문제해결이 불가능해, 이는 자연히 고객의 피해로 이어질 소지가 컸다.
한편,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피해자 A씨의 아들 P(32)씨도 라이나 생명 해당 보험상품군 중 2~3개의 약관을 내려받아 검토했으며, 이에 대해 해당 생보사 고객센터 측에 따져 묻자 나온 상담원 Y모(女) 씨의 답변.
P씨는 우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Y모 씨에게 "라이나 생명이 전부터 어떤 식으로 이중출금 문제를 해결해왔는지 알고 싶다"면서 "고객이 문제가 터지면 꼭 이렇게 항의를 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라이나 생명 측 고객 서비스(CS) 프로세스에 대한 P씨 질문에 답을 하긴커녕, "만약에 저희가 출금됐다면 환급을 해드린다"며 "환급을 원치 않으면 선납 처리된다"는 황당한 답변만 늘어놓았다.
이에 격분한 그가 "이번에는 다행히 아버지(보험계약자)가 확인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계약자도 모르는 사이에 이중출금됐을 게 아니냐"며 항의했으나, 그녀는 "확인해 드릴 테니 주민등록번호를 불러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는 이에 "내가 보험계약자로 라이나 생명에 가입한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난 데 없이 왜 내 주민등록번호를 알려고 하느냐?"고 되물었으나 Y모 씨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어 그는 "내가 2~3개 약관을 선별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보험계약자가 회사에 보험료 지불 시 지금과 같은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규정이 없었다"며 "이게 만약 고객(보험계약자) 모르게 내부 업무 규정대로만 진행되고 있는 거라면 해당 약관은 보험계약자와 사측 간 이권 분쟁 발생 시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체 내부 규정은 임·직원 업무 프로세스상 필요한 것일 뿐 보험계약자와 회사 양 측의 이권분쟁은 물론, 보험료 이중출금으로 인한 일방적 피해보상 범위를 규정할만한 강제력은 없는 것. 상법 등 실정법에 근거한 규정도 일부 조항에 그쳐 소비자 즉 계약자가 이번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구제받을 길은 사실상 없는 것과 같다.
양 측의 실랑이 끝에 결국 해당 상담원은 한풀 꺾여 "이중출금 문제에 대해서 (약관 내용을) 확인하고 연락드리겠다"는 답만 남긴 채 전화를 끊으려 했고, 이에 P씨는 "컨설턴트(상담원)가 괜히 컨설턴트냐"며 "(라이나 생명 고객센터 상담원들은) 평소 약관도 숙지하지 않고 있느냐?"고 거듭 꼬집어 말했다.
이 때문에 "죄송하다"는 말만 연거푸 반복하던 상담원은 전화를 끊고 한참 뒤 P씨에게 재차 연락해 "'(고객센터 윗선에서 P씨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먼저 제공했을 때에 한해서 확인하고 처리해드려야 한다'고 했다"는 답변만 내놨다.
이에 대해 P씨가 "가입자(보험계약자)가 아닌데도 개인 신원확인이 되지 않으면 약관 내 불공정 규정 유무를 답변해줄 수 없다는 거냐?"고 따져 묻자, 상담원은 "그렇다"며 이로써 양자의 서슬퍼런 대화는 끝이 났다.
이날 A씨와 P씨의 말에 따르면, 이처럼 이중출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원과 오랫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난 뒤에도 아직까지 라이나 생명 등 생명보험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오늘도 생보사 고객상담 현장의 중심에 서있는 고객들에게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보험사들이 해당 문제를 이처럼 회피하려만 들고 '금융 소비자 신뢰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직접 국회 본회의장에 나서서 "인구 5천만이 넘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호언장담하는 한국은 앞으로도 영원히 '금융 후진국'이란 멍에를 쓰고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