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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가스’… 방독면 찾는 세계 경제

 

우크라이나는 예로부터 ‘체르노젬’이라 불리는 비옥한 흑토 지대에 자리하였고, 그만큼 농축산물의 생산도 풍족한 편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 초반 스탈린이 집단 농장 제도를 실시한 이후, 생산 의욕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아사하는 ‘홀로도모르(Holodomor)’ 사태가 일어났고, 1980년대에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나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그리고 소련에서 독립한 지 20년 남짓 지난 지금은, 서부의 친유럽계와 동/남부의 친러시아계로 나뉘는 갈등이 시민 혁명과 ‘크림 반도’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일단, 러시아의 차관 도입이나 가스값 지원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으로, 우크라이나의 화폐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또한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평가에서도 각각 CCC(S&P/피치), Caa2(무디스)를 받는 등 신용 상태가 좋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외환 보유고는 약 180억 달러(약 20조 원)인데, 그 중에서 현재 상환이 다가오는 단기 외채의 비율은 지난해 9월 말 289%에 달했다.

또한 환율, 국가 부도 위험도, 장기 국채 금리도 치솟았다. 그리하여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한 상태지만, 지난 금융 위기 때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IMF는 강도 높은 내정 개혁을 요구하고 있어 현재는 지원이 어렵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산 몇몇 수출품에 관세를 면제해 주고 있지만, 이번 사태 전부터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인해 위축된 우크라이나 내부 산업이 호전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또한, 러시아에 에너지의 적잖은 부분을 의지하는 유럽 각 국가의 상황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현재 유럽연합은 필요한 원유와 천연가스의 약 1/3 정도를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있으며, 특히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의 비중이 약 40%에 달한다. 근래는 유럽 각국이 북미에서 발견된 셰일 가스 등에 관심을 갖고 러시아에의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 하지만, 아직까지 러시아의 압박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또한 유럽 경제는 자연히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작년부터 이어진 중국/브라질 등 신흥국의 경제 불안 및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정책 등과 겹치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이 시작된 이후 미국의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연결되어 등락을 거듭했으며, 미국의 제조업 지수나 개인 소비 지출 등이 호전적으로 나왔음에도 부정적인 투자 심리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 쪽의 경제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유럽연합은 이미 경제 제재를 추가하기로 예고한 상태이고, 경제 규모로만 치면 서방이나 미국에 비해 러시아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정 불안으로 우크라이나 화폐 가치가 떨어질 때, 러시아의 루블화도 동시에 값이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다만 ‘자원’과 ‘무력’을 바탕으로 한 러시아와, 소치 동계 올림픽에 이어 크림 독립 문제로 국내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사태를 쉽게 끝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