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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태 악화에 정유업계 근심 깊어져

[재경일보 김진규 기자] 이라크 사태가 내전 상황으로 치달음에 따라 국내 정유업계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이라크 북부를 장악한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할 정도로 기세를 올리고 이에 대응해 미국이 개입을 준비하는 등 이라크 사태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서 상당량의 원유를 들여오는 GS칼텍스는 물론 여타 업체들도 석유제품 가격이 갑작스러운 원유가 상승세를 따라잡지 못할 경우 손해를 볼 전망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업체는 이라크에서 전체 원유 수입량의 20∼25%를 충당하는 GS칼텍스다. 이라크산 원유 도입량은 매월 400만∼600만배럴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2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라크산 원유는 배럴당 1.5∼2달러 저렴하다고 업체는 설명했다.

반군은 바그다드 위쪽 수니파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반면 GS칼텍스 송유관은 이라크 최남단인 바스라시에 위치해 현재까지는 원유 공급에 별 차질이 없지만, GS칼텍스는 사태 악화에 대비해 대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반군이 남쪽으로 영역을 넓히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산유국으로 도입처를 변경하고, 장기적으로는 중동 일변도에서 벗어나 아프리카·남미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이미 6월 중 이라크산 원유 200만배럴을 사우디산으로 대체했고, 올해 들어 유럽 지역에서 200만배럴을 들여왔다.

그러나 바그다드 아래쪽은 이라크 인구의 약 65%를 차지하는 주류 시아파 지역이어서 수니파 위주의 북부처럼 단기간에 점령당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산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업체들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업계의 정제마진은 원유가에 비례하지만, 이번처럼 돌발 변수로 인해 단기간에 원유가가 급등할 경우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원가 상승 요인을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정제마진이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석유제품가격 변동이 유가 상승폭에 못 미치면 정제할수록 적자가 나는 '역마진' 현상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또 중동산 원유를 국내로 들여오기까지 한달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유가가 오르면 미리 확보한 원유 재고의 평가 이익이 상승해 일시적으로 실적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개선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라크 사태가 불거진 이후 두바이유 가격은 6월 5일 배럴당 104.3달러에서 일주일만에 5.2달러 급등했지만, 동기간 휘발유는 배럴당 0.7달러, 등유와 경유는 각각 2.1달러와 1.3달러 오르는 데 그쳐 상승폭이 제한적이었다.

한편 국내 소비자들은 당분간 기름 값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는 17일 현재 1천859.93원인 휘발유 가격이 다음주(6.22∼28) 1천858원으로, 1천668.48원인 경유 가격은 1천666원으로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HMC투자증권은 "이라크 원유 생산량은 글로벌 생산량의 약 3%로 과거 1·2차 이라크 전쟁 때보다 비중이 감소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여력도 충분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는 한 유가가 더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이번 이라크 사태로 국내 건설사들이 이라크에서 진행중인 건설 사업에 대한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KB투자증권은 국내 건설사들이 이라크에서 진행 중인 건설 사업이 내전의 직접적인 영향권과 물리적 거리가 있다며 공사 피해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허문옥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라크에서 대부분 건설사의 공사지역이 남동권 또는 남부 내륙"이라며 "내전의 직접적인 영향권인 북부지역과는 떨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허 연구원은 "건설사별로는 대우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의 공사지역이 내전지역과 멀어 무리 없이 공사가 수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화건설이 수도 바그다드에서 10km 떨어진 곳에서 수행 중인 도시개발 사업의 경우 내전이 심각해지면 지리적 요인에 따라 공사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B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라크에서는 한화건설(비스마야지역 도시개발·9조원), 대우건설(바스라지역 방파제·7천억원), SK건설·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등 4개사(카르발라지역 정유설비·6조원), 삼성엔지니어링(주바이르 유전개발·1조원) 등의 건설 사업이 진행 중이다.

허 연구원은 "공사 지연이 발생하더라도 발주처 귀책사유로 재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며 "따라서 원가 상승에 대한 위험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내전이 지속한다면 추가 수주에는 적신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유가 상승이 한국전력의 올해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HMC투자증권은 이라크 내전이 중동 전반에 걸쳐 극단적으로 확산하지만 않는다면 단기적인 유가 상승이 한국전력의 올해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동진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1% 변동이 한국전력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최대 연간 2천14억원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유연탄 가격과 국제 유가 간 상관관계가 크게 낮아졌고 환율 하락이 유가 부담을 흡수하므로 실제 비용은 추정치보다 작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전기요금 산정기준 개정안으로 요금의 사후 정산을 명문화해 요금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며 "유가 상승으로 비용 부담이 가중하더라도 앞으로 요금 인상으로 회수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