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악재가 불거지면서 증시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의 급등, 일부 국가의 디폴트 우려, 주식형 펀드의 자금 유출 등 악재가 겹치면서 당분간 보수적인 투자전략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고객예탁금의 증가 등 긍정적인 면이 관찰된다며 저가매수론도 내놓고 있다.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6일 이후 단 하루를 제외하고 연일 하락해 투자자들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6일 1,210선까지 올라섰던 지수는 이날 1,127선까지 주저앉았다. 증시 약세를 불러온 가장 큰 요인으로는 국내 증시의 투자심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달러 환율의 급등이 꼽힌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이어진데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화 매집세가 강화되면서 환율은 6거래일째 급등해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450원대까지 올라섰다.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이 1,25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두 달도 못돼 환율이 200원이나 오르는 급등세가 연출된 것이다. 국내 증시의 수급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형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도 우려스러운 점이다.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자금형 펀드에만 돈이 몰리면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올해 들어 1천800억원 가량의 돈이 빠져나가 증시의 수급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메리츠증권의 박현철 애널리스트는 "코스피지수가 1,200대를 뚫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 악재도 증시의 투자심리를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 아일랜드 국채의 부도 위험에 대비한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비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는 등 러시아, 동유럽 등을 중심으로 일부 국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구나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2조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안과 대규모 경기부양책은 시장의 싸늘한 반응 탓에 뉴욕증시에 전혀 호재로 작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신증권의 최재식 애널리스트는 "IT, 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의 경쟁력을 이유로 국내 증시의 차별화를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대내외 악재가 겹친다면 강제론의 근거는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고객예탁금의 증가 등 국내 증시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며 너무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8월 말 8조원 가량으로 주저앉았던 고객예탁금은 직접 투자를 원하는 주식투자자들의 꾸준한 자금 유입으로 이달 13일에는 11조원을 넘어서 주식형 펀드를 대신한 증시의 수급 기반이 되고 있다. 거래대금을 고객예탁금으로 나눈 예탁금 회전율은 작년 말 34%에서 최근에는 54%까지 높아져 증시의 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 거래량이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 미래에셋증권의 정상윤 애널리스트는 "악화되는 경제지표에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 강한 반등세가 연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기를 우량주의 저가매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