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독도수호특별대책위원회(위원장 최정범)가 올해 대학에 들어간 독도를 출생지로 한 '독도둥이' 조한별(19) 씨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최근 방한한 최 위원장은 6일 "올해 경일대학교 부동산지적학과에 입학한 독도 최초의 주민인 고 최종덕(1925-1987년)씨의 외손녀인 한별 양이 동포들의 사랑으로 공부해 훗날 '독도지기'가 돼 달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4년간 매년 200만원씩 장학금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장학금 전달은 5일 서울 중구의 코리아나호텔에서 최 위원장을 비롯해 조 씨와 그의 어머니 최경숙(47) 씨, 최종덕기념사업회 최은경 회장,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orld-KICA) 이사 겸 국가조찬기도회 장헌일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최 위원장은 미국 하원의 '위안부 공식사죄 결의안' 통과에 앞장섰던 20여개의 한인 시민단체(위안부 결의안 연대)가 다시 모여 지난해 10월 설립한 '캔고(CANGOU.Corean American NGO USA)'의 공동위원장도 맡아 '일본해' 표기를 독도로 바꾸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독도에서 실제로 살면서 평생을 보낸 최종덕 선생의 발자취를 제대로 조명하는 일은 곧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최종덕기념사업회가 펼치는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장학금을 받은 조 씨는 대책위원회 앞으로 감사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서 그는 "독도 수호를 위해 눈에 보이는 이슈만을 볼 것이 아니라 일본보다 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독도론 강의가 있는 부동산지적학과에 들어가게 됐다"며 "내 고향 독도를 지키고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 씨의 외할아버지인 최종덕 선생은 1964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아내 조갑순(2005년 작고) 씨와 3녀2남 중의 넷째인 경숙 씨를 데리고 독도에 들어갔다. 1981년 주민등록을 독도로 옮겨 한국 최초의 '독도주민'이 된 선생은 전복 양식과 어업으로 생활하면서 독도의 생명수인 '물골'을 발견했고, 독도경비대 건물과 선착장 등 각종 공사에 참여하는 등 1987년 뇌출혈로 별세하기까지 22년간 독도를 지켜온 산증인이었다.
1990년 1월 24일 울릉도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조한별 씨는 주민등록 등본 상의 주소가 당시 어머니의 주소를 따라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 산 67번지, 즉 독도로 명기됐다. 조 씨는 어머니와 함께 출생 후 1년여를 독도에서 생활하다 뭍으로 나와 경기도 용인고를 거쳐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