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개혁조약인 리스본조약이 발효할 경우 신설되는 2년 반 임기의 정상회의 상임의장 자리에 누가 앉게 될 것인지 관심이 뜨겁지만, 그 향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이 비준안 서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리스본조약의 내년 1월 발효에 대한 불확실성은 해소되는 반면, 'EU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정상회의 상임의장 선출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불확실성이 커지는 양상이다.
정상회의 상임의장 선출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는 초대 EU 대통령에 유력시됐던 토니 블레어 전(前) 영국 총리에 반대하는 기류가 형성되는 점이다.
아일랜드와 폴란드에서 리스본조약 비준 절차가 마무리되던 시점에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이 비공식적으로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 프로젝트에 헌신한 인물이어야 한다"라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완곡하게 블레어 반대 견해를 개진한 바 있다.
또 그동안 블레어 지지자로 분류됐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영국이 유로화 사용을 거부하고 유럽 역내 국가간의 통행제한 폐지협약인 솅겐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은 점을 지적, 사실상 블레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여기에 폴란드 등 일부 중부ㆍ동유럽 회원국도 EU 통합에 사사건건 딴죽을 건 영국에서 이른바 EU 대통령이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EU 소식통들이 전해 블레어 대세론이 심한 역풍을 맞는 형국이다.
블레어 대세론이 꺾이면서 몇몇 '잠룡'들이 대안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재무장관회의를 이끄는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와 얀 페터 발케넨데 네덜란드 총리가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
융커 총리는 27개 EU 회원국에서 최장수 총리를 지낸다는 원만함과 정치력에 후한 점수를 받고 있고 발케넨데 총리는 대국도 아니고 소국도 아닌 '중간 규모'의 회원국 총리라는 점, 이러한 이유로 네덜란드 출신 정치인이 그동안 요직을 맡았다는 관례에 비추어 블레어를 대신할 상임의장 후보로 거론된다.
여기에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은 스스로 고사하는데도 여성 대표주자라는 점에서 블레어 대안으로 물망에 오른다.
다만, 융커 총리나 발케넨데 총리, 로빈슨 전 대통령은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국제사회에서 EU를 대표하기에 블레어보다는 지명도가 낮다는 점 때문에 대세론을 형성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한 EU 소식통은 "정치적, 외교적으로 얽히고설킨 EU의 특성 탓인지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유력한 선두주자로 질주하던 후보가 결국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급부상한 경우가 많다"라고 말해 블레어 대세론의 취약성과 제3인물 가능성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