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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속에 노사 상생의 길이 있습니다”

“여름에 남쪽 산에 구름이 끼면 연못을 말린다”는 속담처럼 맑고도 무더운 날씨였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강남 서울세관 별관 4층으로 올라서자 눈앞에 보이는 최저임금위원회 안내문이 무척이나 소박하다.

일로일로 일소일소. 사무실 문을 열자 문형남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에 “시간 딱 맞춰 오셨다”라며 배려하는 모습에서 세월을 견뎌온 경륜이 느껴진다.

지난 6일 본지 인터뷰에 응한 문 위원장의 모습은 한결 밝아보였다. 기자가 만난 문 위원장은 8차 전원회의에서 보여준 강단 있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단정하고 소박한 몸가짐은 행정·이론·실무를 두루 거친 노사 관계의 전문가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최저임금 결정이 사용자 측과 노동계 측의 대립이 계속돼 한계를 보여주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문 위원장은 금세 노사관계 전문가로 돌아왔다. 

◆ 최저임금 ‘가이드라인 마련 시급하다’

대담이 시작되자 문 위원장은 “이번 최저임금을 합의로 결정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운을 때며 “최저임금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잠정적 합의에는 도달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의 서문을 열었다.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 사이의 이견(異見)을 좁혀가며 노사 간 상생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소통’을 강조하는 문 위원장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문 위원장은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문 위원장은 “중요한 점은 사용자측과 노동계측의 이견(異見)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최저임금을 둘러싼 다툼의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최저임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고 진단하며 겸손한 자세로 일관한 것.

이어 그는 “최저임금결정을 시장에 전적으로 맡기면 해당 근로자의 생계조차 위협받을 우려가 있고 이는 국민경제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가 도입됐다”고 제도의 취지를 밝히며 “최저임금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립이 필요하고 산정방식과 통계조사에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으면 최저임금수준과 관련된 논란이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향후 위원회의 역할은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명쾌한 가이드라인 마련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 문 위원장의 지론이다.

문 위원장은 “최저임금 결정은 관련법이 정하는 목적과 취지에 충실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냐”며 “결국 위원회의 역할은 최저임금이 합리적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통계작성과 현장조사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한편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정책대안 등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위원회의 역할을 규정했다.

◆ 원칙 속에 해답이 있다

항상 여유 있는 미소의 그이지만 원칙을 지켜나가는 일에서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 문 위원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불용침(官不容針) 사통거마(私通車馬)라는 사자성어를 즐겨 읊는다는 문 위원장은 “공적인 일에는 바늘 끝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고, 사적인 관계는 수레가 다닐 정도로 널리 마음을 써야지만 상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제도의 사회적 가치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원칙에 따라 지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라며 “직접적으로 수혜를 받게 될 근로자 수를 추정하면 200여만 명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일선 사업장이 제도를 몰라서 위반하지 않도록 사업장을 적극 계도해 나가는데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철저한 원칙론을 강조하면서 관계를 중시하는 ‘소통’의 리더십을 추구하는 문 위원장의 모습에선 이론과 실무를 두루 섭렵한 노련함이 배어나왔다.

문 위원장은 “노사관계란 인체나 가정과 같아서 ‘대립’이라는 패러다임으로는 지속하기 힘들다”라며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원칙이 지켜져야지만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전했다.


더불어 그는 이번 최저임금 결정을 기점으로 노사관계가 대립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고 강조하며 소통과 공감을 중시해야만 발전적인 노사 관계를 담보할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 갈등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다

노사 관계 전문가로서 문 위원장은 이번 최저임금 결정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저임금 수준을 둘러싼 노사 양측의 격렬한 논쟁 속에서 표결처리라는 강수를 두었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이는 노사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문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문 위원장은 “노동계는 생계비, 경제성장률, 소비자물가 등을 강조하고 경영계는 노동생산성과 영세중소기업의 지급능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위원회는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유사근로자의 임금상승률 등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결정했다”고 이번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이어 그는 “중요한 점은 표결처리를 할 수 있었던 힘은 노사 양측이 서로의 입장에 대해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심의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된 양측의 주장을 좁히기 위해 노력한 결과 노사 간 실질적 간격을 좁힐 수 있었기 때문에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당시 사용자 측의 퇴장은 양 측의 극명한 대립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의문에 대해 문 위원장은 이는 갈등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해석하며 명확히 선을 그었다.

문 위원장은 “주목할 점은 사용자 측이 표결을 선언할 당시 회의에 참석해 표결처리가 가능토록 배려했다는 점”이라며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싸고 노사 간 갈등과 대립이 심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노동계와 경영계가 서로를 배려하고 협조해 나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 노사 관계 전문가, 상생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며 노사 양측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표면적인 대립 속에서 서로의 심중(心中)을 읽어내고 성숙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문 위원장의 오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행정고시 15회 출신으로 노동부 노사정책국장과 기획관리실장, 부산지방노동청장 등을 지내며 노동 관료로서 문 위원장의 오랜 경험이 노사 양측의 심중(心中)을 통찰하는 힘의 밑천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이유로 노사 관계 전문가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문 위원장에 대한 기대가 커져가고 있는 것.

그러나 문 위원장은 노사 관계의 정착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성과를 배분하는 차원에서는 노사 간 대립적인 시각이 보여지는데, 각자의 주장을 관철하는 경쟁적 입장이 되더라도 그 문제해결은 노사관계의 시스템 안에서 원리와 원칙을 지키며 논의해나가야 한다”고 전해 상생의 스펙트럼은 원칙 속에서 넓혀가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어 그는 “대립을 넘어선 노사관계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노사는 일상적으로 협력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 나가야 하며, 협력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노사 간 소통과 공감을 위한 장이 항상 열려있고 원만하게 운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대담을 마무리했다.

인터뷰 말미, 돌부처 웃기기가 자신의 취미라며 소박한 웃음을 보여주는 문형남 위원장은 기자의 손을 꼭 쥔 채 언제 한번 산에 함께 올라 못 다한 이야기를 더 하자며 권위에서 벗어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사람 좋아 보이는 문 위원장에게서 노사 관계의 발전상을 기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웃음 속에 감춰진 전문가로서의 그의 역량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