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함께 ‘3세 경영’ 시대를 열고 있는 3인방 중 하나인 정의선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부회장이 취임한지 1년째를 맞았다.
그는 지난해 8월 기아차 사장에서 그룹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하면서, 부친인 정몽구 회장의 자리를 계승할 후계자의 지위를 확고히 다져가고 있다.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 및 영업지원사업부장으로 출발해 현대차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전무), 현대차 기획총괄본부 사장을 역임했고, 기아차에서 해외ㆍ재무ㆍ기획 담당 사장을 맡아 왔다.
정 부회장은 기아차에서 자리를 옮긴 후 지난 1년 동안 그룹의 전반적인 업무를 챙기면서 3세 경영을 위한 지평을 넓히고 있다.
특히 기아자동차 시절에 브랜드경영과 디자인경영 등 주로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 전념했다면 현대차에서는 그룹 전체를 꿰뚫는 하드웨어적인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3세 경영의 선두에 선 정 부회장이 성공적인 연착륙을 보여준 한 해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 현장경영 ‘박차’
신임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은 지난해 9월1일 울산에서 막을 올린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대한양궁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었다.
기아차는 별도 전시 부스를 마련하고 ‘쏘울’과 ‘포르테쿱’을, 과녁 주변에는 ‘쏘렌토 R’과 ‘포르테 하이브리드’를 전시하는 이색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양궁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후 정 부회장은 같은 달 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막한 제63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 발표회를 주도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향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는 투싼ix를 해외시장에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현장 경영’에 시동을 걸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BMW, 르노 등 11개 전시장을 빠짐없이 둘러보며 각 사들이 선보인 최첨단 친환경 기술을 꼼꼼히 살피는 열정을 보였다.
또한 정 부회장은 모터쇼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신형 쏘나타 신차발표회장으로 향하는 강행군을 펼치기도 했다.
이번에 출시된 신형 쏘나타는 현대차의 올해 하반기 실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라는 점에서 발표회의 무게감은 컸다. 하지만 그는 발표회장에서 흔들림 없이 “자동차는 달리는 민간 외교관으로 불린다”며 “나라의 자존심과 명예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철저한 품질관리,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탄생한 신형 쏘나타는 글로벌 명품 중형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며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신형 쏘나타 신차발표회를 마치고 난 이후 정 부회장의 다음 행선지는 체코였다.
현대차는 9월24일 체코 오스트라바시 인근 노소비체 지역에서 체코공장 준공식을 개최했다. 정 부회장은 정 회장을 대신해 이 자리에 당당히 현대차의 얼굴로서 참석했고, 산업통상부 장관 및 주지사 등 체코 정부 고위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 MK 빼닮은 카리스마 경영철학
그가 직접 담당하고 있는 현대차 기획 및 영업 분야는 물론 노사, 재경, 구매, 연구개발 등 그룹 전반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단순히 보고만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어 임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된 준중형 해치백 i30의 개발과 관련, 폴크스바겐의 골프보다 성능이 뛰어나면서 더 값싸게 만들라는 특명과 함께 남양연구소 내에 TF팀을 구성하게 했다.
또한 근로시간면제제도 시행과 관련해 기아차의 노사관계가 악화되면서 현대차 노사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자 즉시 대응팀을 꾸리도록 했다.
마케팅팀에는 현대차의 CI를 3D로 바꾸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해외법인장 회의에서는 임원들에게 직접 영업 현장을 돌도록 지시하는 등, 아버지 정몽구 회장과 쏙 닮은 경영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했다.
◆ 글로벌 항해의 ‘방향타’
정 부회장이 자신의 위치와 관계없이 10여년 전부터 계속 해오는 일이 있다. 바로 해외 유수 모터쇼 현장 방문.
부회장 승진 이후에도 프랑크푸르트ㆍ제네바ㆍ베이징 모터쇼 등을 찾아 직접 주제발표를 맡으며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뿐만 아니라 영어와 독일어 등에 능통해 해외 업체 관계자들과 부담없이 의견을 나누는 것은 물론, 때로는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처럼 해외 인재를 직접 만나 영입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이 그룹의 또 다른 임원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정 부회장을 구심점으로 현대차 내부 글로벌 인재들이 한데 뭉쳐 화합을 이루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며 “정 부회장은 해외 인재들에게 향후 10년 내 글로벌 1위가 될 수 있는 자동차기업은 현대차가 유일하다고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과 함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 정 부회장이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 항해를 책임지는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