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강제병합 100주년,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10일 한국인의 뜻에 반해서 이뤄진 일본의 식민지 지배라며 사죄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병합조약에 대해 국제법상 위법한 행위가 아니었다는 기존 입장을 취해 독도문제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과 함께 두 나라 사이의 거리감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로 느끼고 있다. 지난날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함께 치루는 등 세계인의 눈은 두 나라를 가깝게 보고 있지만 정작 우리들은 역사 속에서 아픔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멀게만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한 세기를 거치면서 다음 한 세기를 기약하는 우리들의 미래는 한 여인의 숭고한 삶이 있어 다시 희망을 품게된다.
지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두 나라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여인. 분명 일본여성이지만 영원한 한국여인으로 남고 싶었던 이방자, 일본명 리 마사코(李方子).
일본에서의 본명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며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의 첫째 왕녀였다. 지난 1901년(메이지 34년)에 출생, 1920년 4월 28일 영친왕 이은(의민태자)과 일본에서 결혼했다.
가혜(佳惠) 이방자 여사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조선왕조 오백년의 마지막을 가장 절실히 느껴야했던 비운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왕녀로서 영친왕과의 정략결혼을 하게 됐고 일본 패망 후 ‘쪽발이 세자비’라는 수모를 받아야 했던 조선왕조 최후 황태자비.
그녀는 황족이면서 동시에 평민이었고 일본인이면서 조선인이었다. 조선의 몰락과 일본 패망을 지켜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픔을 겪어야했던 가녀린 여인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걸어온 길을 보면 그야말로 '향기나는 삶' 그 자체였다.
남편과 함께 소외되고 아픈 영혼을 위해 늘 헌신하려는 마음, 특히 장애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으로 열악한 우리나라의 복지시설과 특수교육기관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겠다. 일찍부터 '더불어 사는 세상', 사회복지 사업이라는 기틀을 최초로 마련한 것이다.
가혜 이방자 여사는 지난 1966년 장애아를 위한 복지단체 '자행회(慈行會)'를 조직·설립해 장애인 복지 향상은 물론 한일 친선 도모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이 여사는 재한(在韓) 일본단체와 일본에 자행회 지부까지 만들어 한일 간 문화교류를 통한 양국의 다리역할을 하며 친목을 다져나갔다.
이는 장애인의 자식을 교사로 키웠던 어머니로, 자행회 창립 멤버 이면서 지난 1965년 이방자 여사와 인연을 맺고 자행회에서 함께 활동을 했던 김수임(90)여사가 걸어온 역사의 진실이다.
이후 이방자 여사와 김수임 여사 등 자행회 회원들이 힘을 모아 1971년 정신박약장애 어린이들의 교육기관으로 자혜학교(慈惠學校)을 설립하게 되는데 학교 부지를 사기 당해 절망에 빠진 자행회에 개성출신 박철준 씨가 땅 1500평을 기부함으로써 지금의 자혜학교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1973년 숙원사업이었던 영친왕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1982년 광명시에 명혜학교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등 사회봉사에 정열을 쏟으며 상처와 고통으로 실의에 빠진 외로운 장애인들의 어머니가 됐다.
또한 이방자 여사는 서예와 그림에도 상당한 수준에 수작을 남겠다. 특히 조선의 궁중의상에도 조예가 깊어서 수차례 국내외에서 발표회를 열기도 하며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는 예술가였다.
◆ 가혜의 숨결이 숨어든 '자혜학교'
그녀의 흔적은 수원에 있는 자혜학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테마식으로 꾸며진 자혜학교 내부는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수준 높은 그림들과 나무와 잔디 등 자연 속에 한 폭의 그림이었다.
교실은 장애학생들의 휠체어 움직임을 고려해 문턱이 없고 바닥은 가지런한 나무결이 이어지면서 나무냄새마저도 정겹게 한다.
틈틈이 숨어있는 작은 배려가 지난날 이방자 여사가 그린 그림 속의 세심한 붓끝을 보는 듯하다.
'푸른 자혜 숲 배움터'를 꿈꾸는 자혜학교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다양한 자연체험학습,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장애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 생태 체험학습장으로 꾸며 이 여사의 '더불어 사는 사회'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06년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이 운동장에 천연잔디를 심고 각종 관련사업 시범학교에 적극적으로 응모해 지난 2007년 ‘생명의 숲 학교’에 선정됐다.
또 지난 2009년과 2010년, 2년에 걸쳐 교내에 온실을 설치해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다양한 원예작물을 재배하고 이 공간 역시 지역사회 주민들의 여가선용 공간으로 꾸며가고 있다.
지금의 자혜학교는 유치원 과정부터 초·중·고 전공과정까지 총 15개 학급에 126명의 학생과 최고의 전문성을 지닌 29명의 교사들이 있는데 지난날 이방자 여사와 박철준씨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며 대한민국 사립특수학교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곳의 정신지체장애학생들은 아름다운 환경에서 꽃과 채소, 나무를 심고 가꿈으로써 사랑을 나누며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며 정서적 안정감을 삶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지게된다.
특히 교육의 중점을 자신있게 살아가는 긍정적인 인간상을 심도록 최선을 다한다.
삼호 생활관, 화정다목적관, 원예치료실, 자혜직업교육관 등과 자혜 마라톤부 및 생활미술 부 등 다양한 자치·적응·계발·봉사·행사활동 등으로 장애학생들이 사회 적응 훈련과 함께 졸업 후 사회에서도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는 긍정의 힘을 배워나가고 있다.
지난 2008년 8월 21일에는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방문해 여름방학 ‘열린 프로그램’을 참관하고, 지도교사와 학부모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자혜학교는 또한 이방자여사배 전국 특수교육 담당 교직원 배구대회로 화합의 장도 마련했다.
이방자 여사가 지난날 보여준 장애인의 교육과 복지에 헌신 봉사한 점을 기리며 전국 특수교사들이 배구대회에 참여해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전국사립특수학교장협의회, 경기도특수학교자율장학협의회, (사)한국장애인부모회 및 경기도배구협회가 좋은 취지를 함께 나누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자혜학교지만 아쉬움으로 남는 점이 있다.
가혜 기념관에는 이방자 여사가 지난날 해외까지 다니며 궁중의상 패션쇼를 열며 이를 통해 기금을 마련했던 것을 기념해 궁중의상들을 전시 돼 있지만 현재 전시된 궁중의상들의 상당 수가 당시 철저한 고증을 거쳤던 진품이 아니란 점이 아쉬움을 사고 있다.
또한 4년 전 자혜학교 부지 1500평을 기증한 박철준 씨의 동상을 기증받았지만 정작 영친왕 내외의 동상을 만들어 모시기 전까지는 안 된다며 4년 동안 동상을 방치한 것은 지난날 어려운 역사 속에서 일궈낸 '자행회'와 '자혜학교'에 대한 가치까지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했다.
이에 대해 김우 교장은 올해 말까지는 박철준 씨의 동상을 비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0년 동안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가혜 이방자 여사와 박철준씨, 그리고 김수임 여사 등 자행회 회원들과 자혜학교 등에 도움을 준 모든 이들이 바라는 세상은 '더불어 함께 하는 사회'일 것이며, 이것이 지난 아픔 속에서 만들어 낸 소중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또한 가혜 이방자 여사가 꿈꾼 소외되고 아픈 영혼들의 치유는 물론, 아픈 역사 속에서 새로운 한·일 관계의 다리가 돼 세상 사람들이 나누고 싶었던 평화와 어울림을, 이곳 자혜학교에서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