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박두병회장 100주년 기념행사 맞아 '제1회 연강예술상' 시상식 개최


“한 말 한 말 쌓아 올려 산 같이 커져라”라는 의미를 가진 두산(斗山)그룹이 올해로 창업 114년을 맞았다.

마침 6일은 두산의 초대 회장인 박두병 회장이 태어난 지 꼭 100돌이 되는 날이다. 두산(斗山)이라는 이름은 박두병 회장의 선친인 박승직 창업주가 아들에게 지어준 두산상회에서 발원한다. 박두병의 두(斗)와 뫼 산(山)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두산그룹이 박두병 회장의 100돌을 맞아 6일 오전 서울 종로5가 두산아트센터에서 ‘故 박두병 초대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두산의 박용곤 명예회장과 박용현 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임직원과 이현재 전 국무총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박용현 회장은 기념사에서 "선친인 박두병 회장은 오늘날 두산의 주춧돌을 쌓았고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하셨다"며 "선친의 노력과 정신을 되새기며 새로운 두산 100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축사에서 "박두병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 대한상의 회장을 맡아 기업인을 하나로 묶고 민간 중심의 성장 시대를 연 주역이었다"며 "원칙이 확고한 분이었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한없이 따뜻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고 회고했다.

◇박두병 회장의 경영 철학 '사람이 미래다'
1910년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두병 회장은 1936년 박승직 상점 경영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51년 박승직 상점의 이름을 두산상회로 바꾸면서 두산시대를 열게 된다.
박두병 회장은 당시로는 드물게 경성고등상업학교(現 서울대 상대)를 나온 수재였다. 1952년 동양맥주, 1953년 두산산업, 1960년 두산건설을 설립해 사업영역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근대적 경영체계를 확립했다.

박 회장은 인재경영을 가장 중요시 했는데 이 철학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메시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실제로 박 회장은 전쟁 후 배곯고 가난했던 1950년대에 직원들을 유학보내기도 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대한상의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기업체질 개선과 산업간 합리화 지침 설정 등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197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 회장에 당선되어 한국기업의 국제적 지위 향상과 외국 진출 교두보 마련에 보탬이 됐다.

박두병 회장은 1972년 11월 폐암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직후에 바로 대한상의로 출근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타계 한 달 전인 1973년 7월 세 번째로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내일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기업과 국내 상공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국가 경제발전에 대한 열정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두산은 이날 행사에 앞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제1회 연강예술상' 시상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1회 수상자에는 공연부문 김낙형씨(40), 미술부문 구동희(36), 김시연(39), 박미나씨(37)가 각각 선정돼 상금과 활동을 위한 상당의 비용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