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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박두병 회장 탄생 100주년으로 되짚어본 두산 연혁

"자기가 갖고 있는 사업체가 절대로 자기 개인 것이 아니고 사회의 것, 나라의 것이라는 생각을 모든 기업인이 가져야 할 줄 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산의 고 박두병 초대회장이 기업의 사회적 환원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당부하며 한 말이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두산 고 박두병 회장의 기념행사가 열렸다. 고 박 회장은 현재 114년이란 역사를 가지며 한국경제 대표그룹으로 성장한 두산그룹의 기틀을 마련,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경영인이다. 최근 공정한 사회를 위해 상생경영이 대두되면서 그의 경영철학과 기업에서 보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점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고 박두병 회장은 1910년 두산의 창업주 매헌(梅軒) 박승직(朴承稷)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 박승직 창업주는 1896년 서울 배오개 네거리에 면직물을 취급하는 '박승직 상점'을 창업해 현 두산그룹의 모태를 일궈낸 거상이었다.

고 박 회장은 부친과 달리 경성고등사업학교(現 서울대 상대)를 나와 근대 기업인이 되기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 학교 졸업 후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에서 근무한 뒤 1936년 박승직 상점 경영에 참여해 일을 배웠다.

광복 후 운수업이란 신 사업에 뛰어들며 새 상호로 두산상회란 이름을 붙였다. 두산이란 상호명은 박승직 창업주가 “네 이름의 가운데 자인 말 `두(斗)’자에 뫼 `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지어주었다.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다.

고 박 회장은 1960년대 들어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한양식품, 윤한공업사 등을 설립하고 합동통신사와 한국병유리 등을 인수하며 기업 규모를 확대했다. 67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제6대 회장에 당선됐다. 상의 회장으로 재임한 6년 동안 고 박 회장은 경제인연합회(현 전경련)와 무역협회 등 3단체 간의 알력을 해결해나갔고 70년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 회장을 맡아 일본•대만•필리핀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재계의 리더로 자리매김하며 한국 기업의 국제적 위상을 한층 높였다.

고 박 회장의 세계화 노력은 경제성장기 한국 경제와 상공업계의 발전을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이후 폐암이 발병했음에도 고 박 회장은 1972년 11월 수술을 받고도 이전과 다름없이 대한상의에 나와 집무를 보는 열정을 보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몸을 생각하시라’고 간곡히 만류했다. 그러나 고 박 회장은 “나의 병이 무엇이고 나의 앞이 어찌될 것인지는 누구라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내가 그나마 여력을 아껴 무료히 지낸다면 이야말로 오히려 안 되는 것이지요. 끝까지 내가 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의 나에겐 일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는 말로 답했다. 1973년 7월 11일 대한상공회의소 8대 회장으로 연임된 고 박 회장은 취임사에서 “내일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기업과 우리나라 상공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라며 마지막까지 열정을 보였다. 이후 폐암으로 1973년 6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두산은 고 박두병 회장이 타계한 지 5년째 되던 1978년,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교육’이라는 고 박 회장의 유지에 따라 연강재단을 설립하고 각종 장학, 학술, 문화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중앙대를 통해 대학교육 발전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박두병 회장의 경영철학

고 박 회장의 경영철학은 특히 인화(人和), 근검, 정직, 신용을 실천한 매헌의 길을 따랐다.
그는 부친의 경영이념을 본받아 기업경영에서 사람을 중시하며 모든 사람의 참된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뜻을 이어갔다. 특히 강요된 인화가 아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화가 참된 인화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기업 경영의 핵심이 인재 육성에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한 단계적인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1950년대에 우수 직원들을 선별하여 독일과 미국 등지의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 우리나라 보다 앞서 있는 경영기법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고 박 회장이 얼마나 인재 중시 경영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사람이 미래다'라는 메시지로 광고를 내보는 것도 고 박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두산의 뜻이 담겨있다.

또한 고 박 회장은 성실함을 강조했다. 순리에 어긋나는 과욕과 무리야말로 박 회장이 가장 경계한 것이었다. 지나친 욕심은 반드시 무리한 행위를 낳게 하고, 결국은 자신을 파멸시키게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정직도 중요한 경영철학 중 하나였다. 고 박 회장은 60년대 중반부터 6년간 외자도입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외국 자본을 들여 오는 역할도 했고, 경제정책 자문을 위해 자주 대통령을 만나는 기회가 있어 두산의 중화학진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자리도 많았다. 그럼에도 비도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여 계획을 진행시키지는 않았다. 고 박 회장 스스로의 철학을 지키며 정직과 도덕성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밖에도 고 박 회장은 기업이 창출한 이윤으로 사회에 돌려주는 일이 우리나라를 역경에서 벗어나 부국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믿고 실천한 기업인이었다. 그는 기업을 합리화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이 곧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 이행이라 생각했다. 나아가서는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실천하는 것이 보다 더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 이행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