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아시아와 유럽 및 중동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미 국채를 계속 보유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에도 불구하고 미 국채가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7일(이하 현지시각) 등급 강등에도 아시아, 유럽 및 중동 중앙은행들이 미 국채 보유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속속 밝혔다고 보도했다.
중국에 이은 미 국채 보유 2위국인 일본의 한 관리는 익명을 조건으로 블룸버그에 등급 강등에도 미 국채 신뢰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재무상은 "미국채에 대한 신용도가 변하지 않았다.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라며 미국채를 계속 구입할 방침을 표명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스토르차크 재무차관은 6일 전화회견에서 "미 국채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며, 미국에 대한 투자 방침을 재검토하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인 투자 전략 아래에서 이번 등급 강등은 무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러시아가 미 국채 보유 10대국에 포함되는 점을 상기시켰다.
미 국채 보유 3위국인 영국의 빈스 케이블 산업경제부장관도 단기적으로 "달러가 (여전한) 핵심 기축통화"라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그는 또 스카이뉴스 채널에 "미 의회에서 불거진 부채상한 증액을 둘러싼 혼돈의 결과로서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며 "하지만 미국 정치인들이 (부채상한 증액에) 합의했고, 지금 미국의 입장은 매우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프랑수와 바루앵 프랑스 재무장관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수치들에 기초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물을 수 있다"며 S&P 분석에서 2조달러에 달하는 계산오류가 있었다는 미 정부의 반박을 지지했다.
또 "이번 결정에 대해 미국에서 논쟁이 있을 것"이라며 "3개 (주요) 평가회사 중 단 한 곳의 결정일 뿐"이라며, 무디스와 피치는 AAA로 신용등급을 평가했고, S&P만 AA+ 판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요르단 중앙은행의 파리스 샤라프 총재도 "미 국채가 채권시장에서 계속 위험 회피의 핵심 기준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따라서 "S&P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위험을 계속 감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바논 중앙은행의 리아드 살라메 총재도 "위기시 달러가 안전 피난처"라면서 따라서 "달러 보유를 줄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시드니 소재 웨스트팩 뱅킹의 숀 칼로 시니어 통화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아시아가 해외에 분산돼 있는 미 국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이 (미국의 등급 강등에) 즐겁지는 않겠지만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계속 (미 국채를) 보유할 것"으로 내다봤다.
칼로는 "그들이 자산 유동성을 유지하도록 압력받고 있다"면서 따라서 "국채시장보다 유동성이 더 큰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 국채가 최소한 (지금까지) 잘 해왔다"면서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위험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 린치 분석을 인용해 미국채 투자자들이 지난달 31일까지의 3개월간 3.12%의 수익률을 올렸다면서 이는 1천만달러를 투자해 그 사이 31만2천달러를 벌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S&P가 미 등급 강등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주 사이 미국채 시세가 꺾이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세계경제 둔화 우려가 깊어지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채시장 가늠자인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5일 S&P의 등급 강등이 발표되기 직전 2.56%에 근접해 한달 전의 3.12%보다 크게 낮아진 점을 블룸버그는 상기시켰다. 국채 수익률은 가격과 반대로 간다.
뉴욕타임스는 7일 미국의 위기 요소가 이미 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 불안 속에 안전투자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금과 미 국채를 대신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증권과 투자 뱅킹 비즈니스를 주관하는 제프리스의 워드 매카시 수석 금융 이코노미스트도 뉴욕타임스에 "사람들이 숨을 안전한 곳을 찾고 있다"면서 "금과 미국채 외의 달리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등급 강등이 달러 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효과를 낼 것으로 관측됐다.
GFT의 글로벌 리서치 책임자 캐티 리엔은 마켓워치에 미국의 등급 강등이 달러에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보면서 "최소한 2-5%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등급 강등이 미시적으로는 충격이 적을지 모르지만 거시적 측면에서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씨티뱅크 서울의 동 킴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7일 금융시장이 "등급보다는 펀더멘털에 더 의미를 둔다"면서 따라서 미국의 절대적 부채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자지급 능력도 유지되기 때문에 미시적으로는 충격이 심각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시적 측면에서는 얘기가 다르다면서 미 경제의 핵심인 소비 전망이 어둡고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두차례의 '양적 완화' 등을 통해 돈을 엄청나게 풀었지만 이것이 제대로 돌지 않는 것도 현실인 상황에서 공화당은 계속 재정 감축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에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다고 그는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그동안은 '마이너스 통장'을 통해 계속 빚을 돌려막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나 유럽에서 채무 위기가 불거지고 이것이 세계로 전이되면서 상황이 급속히 악화됐다면서 로고프의 표현대로 "부채 폭탄의 연쇄 다중 폭발이 파국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미국 채권 최대 보유국인 중국은 미국의 '빚잔치'가 막을 내렸다면서, 달러화 자산 투자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미국 투자에 대한 불만을 계속해서 표출해온 터였다. 중국은 거의 유일하게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에 대해 비판적인 날을 세우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6일 논평에서 "빚에 허덕이면서도, 최고 국가 신용등급(AAA)을 보유한 덕에 해외에서 느긋하게 돈을 꿔온 '엉클샘(미국을 지칭)'이 사상 처음으로 신용등급을 강등당했다"며 "미국이 빚진 돈으로 호사를 누렸던 시절은 끝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미국이 거대한 국방 지출과 사회 보장 비용을 줄이지 않는다면, 국가 신용등급이 추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