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미국과 유럽발 악재로 인해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주요 중앙은행들이 비록 직접적인 공조는 아니지만 잇따라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이례적인 조치를 내놓은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들이 내려지고 있다. 그리고 버냉키를 중심으로 연준이 이번에 내놓은 조치에 대해서는 시장 기대에 미흡한 것이라면서도 즉각 시장 구제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정치권을 압박하려는 계산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에 대해서는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현금의 보유를 늘리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 중앙은행들의 적극 개입 긍정적
프랑크푸르트 소재 도이체방크의 스테판 슈나이더 수석 국제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중앙은행들이 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왔다"면서 반면 "법률 입안자들은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믿음을 져버리는 행동만 해왔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정치권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
블룸버그는 이와 관련해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지난 7일 "금융 안정과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한 성명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 정책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란 일각의 비판을 무릅쓰고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재가동키로 하고 즉각 실행에 들어간 점을 상기시켰다.
이어 연준도 9일 "최소 2013년 중반까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이례적으로 시한을 명시하고 "추가 조치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음을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또 영국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의 머빈 킹 총재도 10일 기자들과 만나 영국 경제가 직면한 맞바람이 거세다면서 경제가 더 악화될 경우 당국이 부양책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고, 일본은행의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총재는 9일 지난주 엔고에 다시 개입하고 채권 매입 규모를 10조엔 증액했음에도 불구하고 엔이 계속 강세를 보이는 것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스위스 중앙은행도 10일 스위스 프랑 가치 급등이 "여전히 과다하다"면서 더 개입할 것임을 강조했음을 블룸버그는 상기시켰다. 스위스 중앙은행의 개입은 초강세를 보이던 스위스프랑의 가치가 다소나마 떨어지는데 영향을 미쳤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안 최고경영자(CEO)는 10일 블룸버그 TV 대담에 나와 연준과 ECB 및 다른 4개 주요 중앙은행이 지난 2008년 10월 잇따라 금리를 인하한 후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엘-에리안은 "중앙은행들이 함께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 시장의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의 바람은 다른 기관들도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버냉키: 기대 미흡하지만 정치권 압박 의도
블룸버그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학위 논문이 대공황 쪽임을 상기시키면서 그가 평소 "대공황의 교훈은 정책 당국이 (금융 위기시) 과감하고 창의적이며 (필요하다면) 강압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고 지적했다. 또 "국제 위기는 국제적 반응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버냉키의 지론임을 상기시켰다.
저널은 또 버냉키가 시장이 바라는 3차 양적완화 카드를 유보한데 대해 정치권이 움직이도록 더 강하게 압박하려는 계산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연준이 주저하지만 결국 과감하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워싱턴 정가가 기대하는데 쐐기를 박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준이 저금리 기조를 최소한 2013년 중반까지 유지하겠다고 이례적으로 명시한 것과 관련해 선거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계산이 포함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CNN 머니는 10일 '버냉키가 수건을 던졌다'는 제목의 분석에서 연준이 금리 적용 기간에 대해 통상적으로 몇달 가량을 의미하는 "상당 기간"이란 표현을 쓰던 것을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특정 시점을 박은 것이 일본이 과거에 그랬듯이 장기 금리가 낮게 유지될 것임을 시장에 확신시키려는 계산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굳이 그 시한을 2012년이 아닌 2013년으로 늦춘 것도 내년의 미국 선거에 얽히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뉴욕 소재 구겐하임 파트너스의 미 국공채 거래 책임자 제이슨 로건은 블룸버그에 "연준의 조치가 지극히 놀라운 것"이라면서 "시장에 '일본과 같은 장기 저성장 모드에 들어왔다'는 점을 인식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기업의 현금 유보는 갈수록 늘어나
그러나 기업의 현금 유보는 갈수록 늘어나 이들 중앙은행이 겨냥하는 유동성 효율화 노력은 여전히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켓워치는 10일 '다우지수 블루칩 기업이 더 많은 현금을 쌓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6월말 현재 다우 30대 기업 가운데 24개사의 현금 및 단기투자 규모가 한해 전에 비해 18% 늘어 2천560억달러에 달했다고 전했다. 캐퍼필라의 경우, 무려 3배가량 증가해 현금 보유가 107억달러에 달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도 43% 증가해 520억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존슨 앤드 존슨은 57% 증가해 거의 300억달러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코카콜라와 셰브론도 각각 140억달러(38% 증가)와 180억달러(36% 증가)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회사 디어본 파트너스의 폴 놀테 대표는 마켓워치에 "이들 대기업이 재무 상황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라면서 구조 조정과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수익성이 한해 전보다 크게 개선된 점을 상기시켰다. PNC 애셋 매니지먼트 그룹의 빌 스톤 투자책임자(CIO)도 "금융 위기의 쓰라린 기억이 여전한 생생한 상황에서 이들이 불확실성을 감안해 이처럼 현금을 쌓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