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 핌코를 운용하는 '채권왕' 빌 그로스가 미국 채권을 모두 처분한 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이로 인해 '채권왕'이라는 닉네임에도 어느 정도 금이 가게 됐다.
30일(현지시각) CNBC에 따르면, 그로스는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의 국채를 더 가지고 있었어야만 했다"면서 "미국의 실질 경제 성장률이 2%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빌 그로스는 올해 초 자신이 운용하는 토탈리턴펀드에서 2천440억달러의 미 국채를 팔았다. 그리고 지난 6월과 7월에는 미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반복해서 투자자들에게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월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3.5%일 때 인플레이션 때문에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미 중앙은행(Fed. 연준)이 물가 상승을 막으려고 금리를 올리면 국채 가격은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6월 연준의 2차 양적완화가 끝났을 때도 그는 연준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달 들어 유럽과 미국의 재정 위기에 이어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이들 국가의 경제 성장이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금리는 계속해서 동결되어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아왔던 미 국채는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계속해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10년만기 미 국채의 수익률은 한때 6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2%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었다.
채권의 수익률 하락은 채권의 가격이 그만큼 올랐다는 의미로 그로스의 예상과 달리 미 국채가 강세를 보인 것이다. 그로스가 머쓱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결국, 그로스는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고 지난 29일 현재 핌코의 대표펀드 수익률은 3.29%로 동종업계 평균치인 4.55%보다 한참 아래이며, 수익률 순위도 589개 채권 펀드 가운데 하위권 수준인 501위로 밀려났다.
뒤늦게 그로스는 미 국채와 국채 관련 파생상품을 최근부터 매입하기 시작했지만 채권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그로스는 자신의 요즘 심경에 대해 FT에 "집에서 맥주병 들고 울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