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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계속된 문어발 확장에 출총제 부활?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를 보완하겠다고 밝혀 현 정부 들어 폐지됐던 출총제의 부활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20일 출총제 부활과 관련해 "출총제 부활 등을 놓고 아직 공식적인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며 "정치권의 요구가 있으면 정부 차원에서 입장을 정하겠다"는 원론적인 태도를 보였다.

출총제는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액의 일정 비율을 초과해 국내 다른 회사에 출자해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제한한 제도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없어져야 할 규제로 꼽히며 2009년 폐지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박 위원장은 19일 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대기업 집단의) 미래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한 출자 부분은 인정해야 하지만, 대주주가 사익을 남용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강화해야 한다”며 "출총제 (폐지로 인한 부작용)를 보완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출총제 부활을 시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박 위원장은 의총 도중 기자들과 만나 "출총제 부활을 얘기한 적 없다"며 "세계화 시대에 외국 기업은 전혀 규제가 없고 한국 기업만 규제를 받는다면 역차별 문제가 있고 미래성장동력이나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 출총제를 폐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주주의 사익 추구라든가 남용된 점이 있어서 그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완 방법에 대해서는 "출총제(폐지로 인한 부작용)쪽을 보완할 수도 있고, 공정거래법에서 그 부분을 보완하거나 강화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박 위원장도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출총제 폐지를 주장한 바 있지만 이번에 출총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겠는 뜻을 밝히면서 MB노믹스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박 위원장이 앞으로 재벌 개혁 카드를 꺼내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통합민주당도 지난 17일 발표한 10대 핵심정책의 하나로 출총제 부활을 제시한 상태다.

출총제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으려는 취지로 나온 조치지만, 사전적 규제로 기업활동을 가로막는다는 재계의 반대와 정부의 경제 활성화 판단 등에 따라 폐지와 부활을 반복했다.

이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6년 12월이다. 당시 자산총액 4천억 원 이상인 32개 기업집단의 출자총액을 제한했다.

1993년에는 자산총액 30대 기업집단으로 지정 기준을 변경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인수·합병(M&A) 제도개선을 계기로 폐지됐다.

이후 순환출자 등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 간 출자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자 2002년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을 대상으로 부활했다.

2007년 4월에는 국제경쟁 체제에 맞지 않는 대표적인 기업규제라는 지적에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 소속의 기업은 순자산의 40%를 초과해 계열사·비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완화되기도 했다.

MB정부 들어서 2009년 3월에는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늘린다는 게 폐지 목적이었다.

당시 이 조치로 삼성, 현대차, SK, 롯데, GS 등 10개 기업집단 31개사의 투자규제가 풀렸다.

하지만 출총제가 사라지자 일부 대기업이 제빵 등 외식사업과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 등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사업 영역까지 침범,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계열사 일감을 사실상 독과점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 방식의 영업으로 큰돈을 벌어 계열사 지분율을 높이기까지 했다.

반면 동네빵집은 10개 중 8개 이상 사라지고, MRO 중소기업이 크게 위축되는 등 부작용들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규제가 아닌 자율에 의해 해결하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해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문어발식 확장 자제를 이끌어내고자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는 한편, 이익공유제도 도입하려고 하고 있지만 대기업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가 15대 재벌의 최근 4년간 계열사의 수 증가와 신규편입 계열사 업종을 분석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계열사 수는 2007년 4월 472개사에서 지난 4월 778개사로 4년간 306개사(64.8%)나 급증했다.

그룹별 증가율은 현대중공업, 포스코, LS, STX, LG 순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단순 증가 수는 포스코, 롯데, SK, LG·GS 순으로 조사됐다.

15대 재벌의 4년간 신규편입 계열사 수는 488개사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제조업은 126개사(25.8%), 비제조·서비스업은 362개사(74.2%)로 비제조·서비스업으로의 진출이 압도적이었다.

최근 산업연구원 이항구 연구위원이 발표한 '대기업 집단의 서비스업 진출 동향'에 따르면, 국내 20대 대기업 집단의 서비스 계열사 376개의 2010년 매출액은 342조653억 원으로 국내 서비스 산업 총 생산의 55.6%에 달했다.

대기업 계열사들은 내부 계열사에 대한 불공정 거래 등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고 핵심사업 비관련 분야까지 진출하고 있어 중소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이런 문어발식 확장으로 대기업들은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8월 재벌닷컴과 통계청,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자산 순위 10위권 그룹 소속 계열사 가운데 은행과 보험, 증권을 제외한 539곳의 지난해 매출액이 75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 전체 제조업체 매출의 41.1%에 해당하는 것이다.

10대 그룹 제조업체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40%를 넘어선 것은 역대 처음이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현상이 역사상 가장 심해졌다는 뜻이다.

국내 전체 제조업체 매출은 2005년 1천196조원에서 작년 1천840조원으로 5년간 53.8% 증가했다. 10대그룹의 제조업 매출은 412조원에서 756조원으로 83.5% 급증했다.

10대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제조업체 매출은 784조원에서 1천84조원으로 38.3% 증가하는데 그쳤다.

재벌의 주식시장 영향력도 급증했다.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2008년 말 277조3천82억원으로 전체 주식시장의 44.50%였다. 2009년 말에는 447조8천507억원으로 46.32%로 늘더니 지난 1일에는 698조7천389억원(52.20%)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출총제 폐지로 인해 정부가 추진해온 대-중소기업 상생 발전의 근간이 흔들렸다는 비난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 때리기'에 나섰다. 뒤늦게 정부가 동반성장, 상생발전 등을 강조하며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재벌의 탐욕을 제어하기는 이미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통합민주당에 이어 한나라당까지 합세한 형국이어서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에 어떤 식으로든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위원장의 이번 발언이 '대주주가 사익을 남용하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출총제 부활보다는 보완책 마련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