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준식 기자] 상당수 재벌 계열사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주주총회를 열 계획이어서 주총일 담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들이 특정일을 선택해 동시에 주총을 여는 것은 소액주주의 참여를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외환위기 전후로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대리한 시민단체의 주총 참여가 활발해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몰아치기 주총이 관행화되어 왔다.
23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까지 주총일을 공시한 12월 결산 상장사 178개사 중 65개사(36.5%)가 다음 달 16일 오전, 57개사(32.0%)는 23일에 주총을 개최한다.
주총일을 공시한 삼성그룹 상장 계열은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제일기획 등 7개사로, 모두 다음 달 16일 오전 9시에 주총을 연다고 밝혔다.
따라서 두 곳 이상의 삼성그룹 계열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은 주총에 참여하려면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8년 삼성전자 주총에서 부당 내부거래와 삼성자동차 출자문제 등에 대해 경제개혁연대(옛 참여연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마찰이 발생해 주총이 무려 13시간 넘게 이어지는 '마라톤 주총'이 벌어졌고, 1999년과 2001년에도 시민단체와 삼성전자 직원들 간에 몸싸움까지 벌어지면서 8시간 이상 지연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차와 현대글로비스, 현대비앤지스틸도 삼성그룹과 같은 날인 16일 오전 9시에 주총을 개최한다고 공시했다.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등 다른 주요 계열은 아직 공시를 하지 않았지만 같은 날 주총을 개최할 가능성이 크다.
신세계와 이마트, 신세계I&C,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신세계그룹 6개사도 모두 다음달 2일에 주총을 열기로 했다.
경제개혁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이 같은 몰아치기 주총에 대해 "한 날에 몰아서 주총을 하면 중요한 안건을 고민없이 통과시키는 등 주주권리에 장애가 생긴다"며 "그룹 계열들이 주총을 분산 개최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전혀 개선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액주주들도 주총일이 같은 날로 잡힌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펀드매니저는 투자한 기업의 주총 안건은 물론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만 한 내용이 있는지 미리 살펴보고 의결권 행사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며 "그러나 몰아치기 주총을 하면 이런 판단을 할 여력이 없어진다. 주주들의 정당한 주주행사권을 기업들이 사전에 막아버리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당국은 재벌들의 몰아치기 주총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면서도 마땅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 LG그룹은 대기업과 달리 계열사 별로 주총일을 분산해서 개최해 관심을 끌고 있다.
LG디스플레이와 LG상사는 다음달 9일에 주총을 개최하고, LG생명과학과 LG유플러스, LG화학은 같은 달 16일에, LG패션은 같은 달 23일에 개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