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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부 홍석우, 동반성장위 밀어내고 재벌들과 성과공유제 '밀약?'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재계가 성과공유제를 자율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 45개 계열사들이 지식경제부와 공동으로 11일 ‘성과공유제 자율추진 협약’을 체결하며 동반성장에 대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 점이 주목할만 하다.

이들은 향후 1년간 654개 협력사와 1073건의 성과공유제 과제를 추진해나가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밝혔다. 이는 지난 2년간 성과공유제 연평균 실적(268건)을 4배 웃도는 수치이며, 성과공유제에 참여하는 협력사도 75개사에서 654개사로 무려 8.7개 증가한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허창수 GS그룹 회장)가 목표로 제시한 수치만을 놓고 보면 괄목할만한 변화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문화가 이전보다 한층 더 튼튼하게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언론에서도 이번 협약에 대해 거의 긍정 일색의 보도를 내놓고 있어 얼핏 보면 착시현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협약은 정부가 의욕적으로 동반성장위원회를 발족시켰던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키고 만 것으로, 고양이를 믿지 못해 뺏어왔던 생선을 다시 고양이에게 맡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또 정부가 호기롭게 외쳐왔던 '동반성장'과 그것을 위한 전위대 역할을 했던 '동반성장위'는 이제 다시 재계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게 됐다.

특히 정부 부처인 지경부가 이번에 협약을 통해 동반성장위에 빼앗겼던 동반성장 정책의 주도권을 사실상 되찾아옴으로써 동반성장위는 이제 있으나마나한 유명무실한 기구가 되고 말았다. 동반성장위와 지경부의 싸움에서 애초 비교가 되지 않는 힘 없는 부처인 동반성장위가 완패하고 만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 부처 간에 협력이 이뤄지기는 커녕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엇박자로 노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홍 장관 이전에 최중경 장관도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제시한 이익공유제에 대해 "애초에 틀린 개념"이라며 반대를 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동반성장위의 위상 급추락은 이익공유제 도입에 결사적이었던 정 전 위원장이 물러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동반성장을 하겠다며 파격적으로 정 전 위원장을 자리에 앉혔지만, 정 전 위원장이 추진하는 동반성장정책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었다. 정 전 위원장의 이익공유제 등 정책에 대해 홍준표 전 한나라당 최고의원이나 김황식 국무총리, 최중경 지경부 장관 등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었다.

이런 가운데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안 가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데 이어 이익공유제와 관련해 논의하는 동반성장위 모임에 전경련에서 불참하는 것은 물론 참석을 원하는 일부 기업에게도 압력을 행사해 불참하도록 강요하는 등 재계에서 강력하게 반발하자 정부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며 정 전 위원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사격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정 전 위원장은 동반성장이라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어렵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잔인하게 말하자면 정부가 양극화에 따른 비난 여론을 벗기 위해 '친재벌적'이라는 이미지를 완화하고 서민과 중소기업을 생각하는 '동반성장'에도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선전하고자 일종의 얼굴마담으로 자신을 세웠다는 불쾌한 사실을 깨닫고 미련 없이 옷을 벗었다. 정 전 위원장은 퇴임사를 통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판단과 함께 동반성장에 대한 대통령과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지금 사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리고 정부는 친재벌 성향의 홍석우 장관을 재경부 자리에 앉혀서 성과공유제를 도입하는 선에서 적당하게 사태를 수습하는 한편 정 전 위원장으로 인해 원치 않게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재벌들과의 갈등도 마무리지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를 두고 이익공유제에 대해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재벌들과 전경련의 정부와 국회를 향한 전방위적인 로비가 먹혀들어 결국은 양측이 성과공유제로 타협을 봤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전경련은 성과공유제 확산에 적극적이었던 지경부 홍 장관과 손잡고 정부의 용인 하에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어느 정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이런 가운데 재경부와 홍 장관은 동반성장위를 밀어내고 성과공유제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친재벌적인 밀약을 맺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어 지경부와 홍 장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됐다. 이명박 정부도 말과 행동이 다르고 생색만 난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이익공유제가 성과공유제로 둔갑

이번 재경부와 전경련 간에 이뤄진 협약의 핵심은 동반성장위가 추진했던 이익공유제가 성과공유제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 사실상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지경부가 이번에 협약을 맺은 '성과공유제'란 지난 1959년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원가절감을 협력회사와 공유하는 개념으로 도입한 것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품질혁신, 기술개발,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 등의 혁신활동을 통해 얻은 성과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사전에 약정한 인센티브(현금 보상, 장기 계약, 공급물량 확대 등)에 따라 공유하는 제도로 이미 일부 기업이 시행하고 있다. 2006년 상생법에 처음 규정됐지만 대부분의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동반성장위가 1년여 동안 추진해왔던 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하청업체나 중소기업들에게 배분하는 것을 법적으로 의무화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발전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기업이 전체 협력업체와 연초에 목표이익에 대해 합의하고 실제 이익이 나오면 목표이익을 초과해 발생한 이익에 대해 개별 협력사들의 기여도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추구한다는 목적은 일치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성과공유제에는 성과를 어떻게 공유할 지에 대한 아무런 기준이 없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약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공유할 수도 있지만, 이는 사실상 기대하는 것이 무리다. 을의 입장에 있는 중소기업이 성과 공유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성과공유제라도 제대로 추진됐다면 이익공유제라는 말이 나올 이유도 없었다.

또 이익공유제는 다수의 협력사와 초과이익을 나누는 것이지만 성과공유제는 지원 대상이 프로젝트별로 한정돼 있다. 나누어야 할 파이가 더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대기업으로서는 협력업체들에게 이익을 조금이라도 덜 나누어줄 수 있게 돼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아울러 성과공유란 기본적인 개념이 대기업이 갑의 위치에서 을의 위치인 중소기업에 베푼다는 것이어서 대기업이 갑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동반성장과 중소기업에 대해 충분히 생색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지만 이익공유는 정부와 법에 의해서 제재되고 감시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당당하게 대기업의 초과이익과 관련해 자신의 몫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이익공유에 대해 법제화하기를 원치 않고 중소기업과 협상테이블에서 동등한 관계를 맺기도 원하지 않았다.

물론 기업의 이익에 대한 분배는 재계에서 주장해온 것처럼 당사자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정부가 제재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친재벌적인 성향을 보여왔던 MB정부가 오히려 동반성장을 언급하고 나선 것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가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소기업은 일감 몰아주기에 업종 침해까지 당하면서 대기업에 의해서 완전히 망해 산업의 기반이 완전히 붕괴될 것에 대한 위기감까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동반성장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까지 선정해서 대기업이 이 업종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으려고 했던 원인이었다. 대기업의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막으려는 방지책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현재 내일을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큰 위기에 빠진 데 반해 4대 대기업 그룹의 매출은 국내총생산(GDP)의 40-50%를 넘었고 대기업의 영업이익률도 8-9% 수준이다. 10대 그룹의 시가총액 비중은 무려 60%에 육박한다. 또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까지 성장해 수출 시장에서도 경쟁기업에 뒤지지 않고 강력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크게 선전하고 있다. 문제는 대기업은 이처럼 대기업은 점점 몸집을 불려가고 성장해가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고사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성장과 이익이 중소기업의 성장과 이익으로는 거의 연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대기업들은 그동안 성과 공유나 이익 공유는 커녕 하청업체로부터 말도 되지 않는 제조단가로 물건을 납품받거나 자금이 충분하면서 대금 결제를 어음으로 하거나 하청 수주를 받을 때 리베이트를 받거나 주문한 물량에 대해 수주하지 않는 발주 취소 등의 악행을 자행하며 중소기업을 괴롭혀왔다. 대기업의 성장에는 중소기업의 희생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정부는 이러한 잘못된 대기업-중소기업의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 동반성장위까지 출범했지만, 지경부는 이번에 재계와 손잡고 동반성장위에 제대로 물을 먹였다.

정영태 동반성장위 사무총장은 이번 협약에 대해 "당초 이익공유제만 논의하려고 했는데 대기업이 성과공유제를 포함한 패키지 형태의 합의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는 이익공유제와 관련해 판매수익공유제, 순이익공유제, 목표초과이익공유제 중 대기업이 기업의 특성에 맞게 어떤 것을 적용할 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요구해오며 기존 이익공유제의 구체적인 실행모델과 사례를 합의안에 포함시키려 했지만, 대기업 측에서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끝까지 반대하고 지경부가 성과공유제 도입으로 선회하면서 결국에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업계에서도 재계의 요구에 정부가 결국은 굴복해 대기업을 손 보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이번 협약은 대기업이 성과공유제 자율적 확산에 노력하면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인센티브를 준다는 조건으로 이뤄졌다. 정부는 대기업이 성과공유제 시행을 위해 재원을 출연하면 이 금액의 7%만큼 법인세를 깎아주고 동반성장지수 가점도 주기로 했다. 결국 대기업은 이익공유제보다 강도가 약한 성과공유제를 관철시켜냈을 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인센티브까지 받아내는 등 자신들이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다 뽑아냈다. 이익에 목숨을 거는 대기업이 아무런 조건과 대가 없이 중소기업과의 나눔을 실천할리가 없다. 역으로 보자면, 대기업은 정부의 인센티브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얼마든지 성과공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제재 없이 기업 자율에 맡기다니…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

이번 성과공유제 협약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법제화 등 제도적 뒷받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반성장에 대해 완전히 재계의 자율에 맡겼다는 것이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대기업에 대해 비꼬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다.

이번 협약을 주도한 지경부에 따르면, 현재 성과공유제를 채택한 28개 대기업의 2009∼2010년 협력사 성과공유 규모는 모두 751억 원에 불과하다. 또 성과공유에 대한 확인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대중소기업 협력재단 내부조직인 `성과공유제 확산추진본부`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2006년 제도가 첫 시행된 이후 작년까지 포스코 등 총 104개사가 제도를 부분적으로 시행했지만 성과공유제 확산추진본부에 등록해 시행하고 있는 기업은 단 28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지난 4월 성과공유제가 첫 발표된 후 성과공유에 나선 대기업은 4곳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민간 기업은 삼성테크윈과 두산건설 등 2곳이었고 나머지 2곳은 수자원공사와 철도시설공단 등 정부 산하 공기업이었다.

성과공유제가 도입된 지 약 6년 가량이 지났지만 사실상 대기업의 성과공유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경부는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성과공유제 도입에 팔장을 걷어부쳤다.

당국의 강력한 동반성장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동반성장과 성과공유를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정 전 위원장은 성과공유제에 대해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깔린 것인 동시에 대기업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대기업들은 더 많은 투자를 받아 내기 위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회사의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액배당에다 사기 진작 차원에서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 등을 아끼지 않으면서 똑같이 고생하고 있는 중소기업과의 성과나 이익 공유에 대해서는 크게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대기업에게 자율적으로 성과공유를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의 성장에는 대기업과 주주의 노력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 같은 대기업의 행태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동반성장에 대해 "중소기업과의 협력뿐만 아니라 정부 특혜를 업고 고속성장한 대기업이 국민 전체에게 진 부채를 상기시키는 의제"라고 설명했다. 정 전 위원장도 "초과 이익이 나는 것은 대기업의 노력도 있겠지만 중소기업의 노력도 있다"면서 "대기업 이익을 주주-임직원뿐 아니라 협력기업까지도 공유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기업은 그동안 정부의 대기업 육성 정책으로 인해 각종 혜택을 받아왔다. 국민들은 애국심으로 국산품을 애용해왔고, FTA(자유무역협정)로 농민 등이 큰 피해를 봤지만 수출 위주의 대기업은 혜택을 보고 있다. IMF와 금융위기 때도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에서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최근에는 고환율 정책으로 인한 혜택도 봤다. 중소기업도 양질의 부품 등을 공급해 대기업을 뒷받침해왔다. 대기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주주와 임직원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중소기업과 국민들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외면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순진한 것인지 흑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대기업을 믿고 성과공유제를 기업 자율에 맡겼다.

◇ 재계는 성과공유에도 불만

재계는 이번 성과공유제에 대해서도 내심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재정위기 등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국내 수출이 둔화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성과공유도 동반성장지수와 같이 누가 잘했느냐를 따지는 방식으로 측정돼 결국에는 기업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장관도 이와 관련 "올해 연말에 협약이행 실적과 확인제 등록실적을 점검해 우수 기업들을 선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과공유를 인정받으려면 대기업과 협력사는 사전협약 단계부터 최종 성과공유까지 모든 과정을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확인받아야 해 재단에 모인 자료에 따라 1등부터 꼴찌까지 성적이 매겨질 수 있다. 마지 못해 이익공유제 대신 성과공유제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택하기는 했지만 성과공유제마저 내키지 않는 대기업으로서는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성과공유제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은 올해 경제 위기를 운운하며 성과공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성과공유제를 실시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가 없고 정부가 주는 인센티브만 받지 않으면 되는 상황이니 비난 여론에 잠시 씹히는(?) 것을 제외하면 손해볼 것도 전혀 없다. 대기업들은 그 동안 각종 비난에도 강한 철면피의 모습을 보여왔기에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다.

◇ 성과공유제 중소기업 체감효과 없어

또 대기업은 성과공유제를 동반성장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체감효과는 미미한 수준인 데다 성과공유제가 대부분 1차 협력회사만을 대상으로 편성돼 있어 중소기업계에서는 이번 성과공유제 협약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성과공유제에 대한 중소기업 기대감이나 체감효과는 아직 미흡한 게 사실"이라면서 "중소기업이나 협력사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성과공유제가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성과공유제가 일부 대기업의 생색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동반성장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성과공유제 추진 자체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니지만, 제도적 결함 등을 감안하면 시장에 확산되기도 어렵고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할 것"이라며 "오히려 현행 대중소기업의 납품체계에서 중소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의 한 관계자도 "이익공유제에 대한 대기업 유인책으로서 동반성장지수 인센티브가 존재해야 한다"며 "성과공유제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은 대기업에 대한 선물세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2·3차 협력회사들은 성과공유제보다는 납품단가 현실화 등의 문제나 먼저 해결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성과공유제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과공유제 도입의 성공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 성과공유제 총대 맨 홍석우

지경부 홍 장관은 성과공유제 도입에 총대를 멨다. 이익공유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며 갈등만 빚어왔던 정부와 재계가 성과공유제 도입에 합의함으로 갈등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은 하나의 소득이지만, 결국 중소기업이 아니라 재벌의 편만 들어준 것은 아니냐는 비판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앞으로 성과공유제가 큰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 비판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동반성장을 사실상 주관해온 동반성장위를 놔두고 성과공유제 협약을 체결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앞으로 동반성장위에서 자체적으로 이익공유제 도입을 계속 추진할 수 있지만, 사실상 힘을 완전히 잃게 됐다. 더 나아가 동반성장위의 존재 의미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법도 하다.

홍 장관은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동반성장을 위해 성과공유제 확산을 강조해왔다. 재계 입장에서는 동반성장위와 계속해서 갈등을 빚는 것보다 지경부 홍 장관을 통해서 성과공유제를 도입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협약을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약식 체결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지경부와 홍 장관이 로비를 당했다는 의혹도 살만한 상황이 됐다.

홍 장관은 이날 협약식에서 "동반성장과 성과공유제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CEO의 의지가 결정적"이라면서 "협약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성과공유제가 기업 내의 보편적 거래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착실하게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홍 장관의 당부대로 협약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기대해볼만한 것이다.

◇ 재계, 성과공유제 도입 위해 국회 로비도 열심?

이번 이익공유제 도입 무산과 성과공유제 도입, 그리고 '경제민주화'와 관련 강도 높은 법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던 새누리당의 입장 선회 등을 놓고 재계의 국회에 대한 로비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19대 국회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상생' 등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출발부터 옆길로 새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에서는 최근 개최한 연찬회에서 경제민주화 개념의 근간이 되는 헌법 119조에서 “자유를 강조하는 1항(경제활동의 자유)을 원칙으로 하되 규제 개념인 2항(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방지)은 보완하는 관계로 하자”고 당내 방침을 결정했다. 자유시장이 '원칙'이고 경제민주화가 '보완'이라는 결론을 내려, 사실상 재벌개혁의 핵심 제도로 꼽히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은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갖고 1항을 강조한 홍일표 원내대변인 및 박민식 의원과 2항을 강조한 정두언 의원, 이혜훈 최고위원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이혜훈 위원은 재벌개혁 정책으로 순환출자 규제,금산분리 강화,불공정 대기업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제안해 관심을 모은 바 있었다. 순환출자 규제와 금산분리 강화는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반대했고 재벌의 불공정과 담합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내용은 민주통합당조차 담지 못했던 파격적인 내용이었지만 없었던 것이 된 셈이다.

재계에서는 국회 개원 첫 날부터 여야 국회위원들을 불러모으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개원 첫날인 지난 5월 3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이른바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5단체가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축하리셉션'을 개최한 것. 이 자리에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원내대표 겸임), 정세균 상임고문 등 여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포함해 약 80명에 달하는 여야 의원들이 총출동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삼성·현대차·SK·GS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장들을 포함해 기업인들은 행사 내내 18대 국회에서 강도 높은 '재벌개혁' 법안들을 내놓을 것에 대한 우려에서인지 의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하며 사적 친분을 쌓기에 바쁜 모습을 보였었다. 의원들도 기업인들은 가장 든든한 후원의 금맥이라서 그런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 같은 후원이 정경유착(癒着)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재벌때리기를 호언했던 19대 국회는 개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원했던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대 수위는 낮아지고 이익공유제 대신 성과공유제가 도입되는 등 벌써부터 대기업 관련 정책에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 이익공유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의 모델 중 하나

한편, 재계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익공유제는 이건희 회장이 주장한 것처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나 있을 법한 것이 아니라 롤스로이스가 항공기 엔진을 개발할 때 표준사업 모델로 자리 잡은 것이다. 롤스로이스와 협력사들은 ‘위험 및 판매수입 공유 파트너 계약’(이하 판매수입공유제·Revenue Sharing)을 맺었는데, 항공기 엔진 개발에 공동 투자해서 성공하면 투자 비율에 비례해 판매 수입을 나누기로 해 큰 이익을 거두어 롤스로이스는 현재 세계 2위 항공기 엔진 제조사로 발돋움했다.

이밖에 비디오 대여체인사업자인 블록버스터는 이익공유제를 유통서비스업에 확대 적용했으며,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건설업계 전반에서는 이와 유사한 순이익공유제를 널리 활용하고 있다. 북유럽에서는 복수의 건설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사를 수주한 경우, 공사비용을 사전에 보상하고 사업이 끝난 뒤에 미리 합의한 비율에 따라 건설사 간에 손익을 공유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상황이 이런 데다 주주나 임직원,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이익을 불법과 편법을 가리지 않고 무더기로 공유하면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재계의 모습이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