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해 전 세계가 우울함 그 자체다. 이런 가운데 한국 경제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도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글로벌 경기 악화로 국내 경기도 동반 부진에 빠져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가 주 원인이다.
한국 정부의 재산과 맞먹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그룹의 오너들은 1%도 채 안 되는 지분으로 문어발로 확장한 기업과 한국 경제를 움켜쥔 채 또 하나의 공화국을 다스리고 있다. 이런데다 정부는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고 나름 세계적인 경쟁력까지도 가지고 있는 대기업에 사실상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사실상 재벌공화국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가끔 쓴소리를 하기는 하지만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최근에는 끝이 보이지 않으며 장기화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서민들이 겪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현재 가계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을 포함해 1000조를 넘어선 부채에 허덕이며 시한폭탄을 안은 채 '빚에 찌든'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글로벌 경기악화에다 대기업의 횡포와 불법 등에 치여서 많은 중소기업들은 오늘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이 영세업종까지 진출한 탓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골목상권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장터에 앉아서 채 1만원도 제대로 벌지 못하면서도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한국이지만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뤄진 그 고속성장의 기적 탓에 기적의 주역들인 베이비붐 전후 세대들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치열한 경쟁에서 완전히 도태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지만, 한국에서는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성장으로 인해 커진 파이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양극화를 점점 더 심화시켜 가고 있는 재벌들의 행태에 대해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어느새 증오로까지 커져 가는 듯한 분위기다. 근래에 정치권에서까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표를 노리는 정략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기업 죽이기', '재벌 죽이기'라며 불만을 토해내는 것은 대기업과 재벌들 뿐이다.
◇ 정부 재산과 맞먹는 민간 100대 그룹 자산
최근 재벌닷컴이 발간한 '대한민국 100대그룹'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간 100대 그룹이 정부 재산에 맞먹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과 민영화 공기업을 제외한 총수가 있는 자산 상위 100대 그룹의 2011 회계연도 기준 총자산이 1446조7620억원으로, 기획재정부가 최근 '2011 회계연도 국가재무제표'에서 공개한 우리나라 정부 보유 총자산 1523조2000억원과 비교해 95%에 이른 것.
특히 삼성, 현대차, SK, LG 등 '빅4'의 보유자산 총액이 671조원으로 민간 100대 그룹 전체 자산의 46.4%를 차지하는 등 상위권 그룹의 경제력 집중이 두드졌다.
또 삼성과 현대, LG, SK 등 10대 그룹이 한국거래소 시장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60%까지 육박한 상황이며, 이들 재벌은 국내총생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10대 그룹, 1%도 안 되는 지분율로 기업지배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주식 소유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10대 그룹 오너의 평균 지분율은 0.94%로 지난 1993년부터 관련 분석을 시작한 이후 사상 처음으로 1%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들 그룹 오너들의 내부지분율은 전체의 55.7%로 늘어 그룹에 대한 지배권은 오히려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집단 소속 전체 계열회사의 자본금 가운데 동일인과 친족, 계열회사 등 내부자의 지분이 차지하는 비중인 내부지분율이 상승했다는 것은 총수의 경영권이 강화됐다는 뜻이다.
10대 그룹의 오너들이 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서도 친족이나 계열사 등의 우호 지분을 끌어모아 기업을 지배하는 것은 물론 한국 경제도 쥐락펴락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총수가 막강한 지배권을 가지고 기업집단 전체 계열사의 경영을 좌우하는 상황에서는 재벌의 중소기업 영역 잠식이나 총수일가의 사익추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대기업집단의 소유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기업의 구조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 대기업 잘 된다고 배 아픈게 아냐
삼성의 한 계열사에 다니고 있는 강모씨(33). 그는 한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에 입사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었다. 높은 연봉에다 최고 수준의 직원 복지, 세계 1위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 등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공채됐을 때는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또 회사에 들어온 이후 '삼성맨'으로서 그의 자부심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아니 삼성은 자신이 보기에도 정말 훌륭한 기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주목 받는 글로벌 기업다운 면모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내부 경쟁이 치열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었고 그 이상으로 처우가 충분히 만족할만하다. 설령 경쟁에서 뒤져 밀려난다 해도 삼성에서 일했다는 이력만으로도 그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삼성에 대한 비판을 이해할 수 없고, 침소붕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재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대기업이 잘 되는 것을 놓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시기질투하거나 쓸데 없이 트집을 잡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땀 흘린만큼 대가를 거두는 것은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진 자가 더 하다'는 말처럼 대기업의 탐욕이 그칠 지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다. 대기업은 지금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존재법칙인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삼키고 삼켜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공룡은 다른 이들도 죽이지만 비대해져 결국 자신도 멸종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기업은 문어발 확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영세업종에까지 침투해 국내 시장을 심각할 정도로 잠식하고 있고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계열사 키우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과도한 확장을 막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등 상생과 동반성장에 거의 무관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대기업을 향한 정부와 정치권의 각종 규제와 입법을 막기 위해 로비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긁어모은 부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 식구만 챙기고 편법적으로 증여까지하며 많은 이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적절하게 돌아가지 않는 부의 분배로 인해 부가 일부에게 편중되고 대부분의 가계의 소득이 악화돼 파산에까지 이르게 되면 제품을 사줄 수 있는 고객이 줄어들어 결국에는 대기업에게 피해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재벌들도 이 같은 위기를 머리로는 인식하고는 있겠지만, 별 세계에서 너무 풍족하게 살다보니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 갇혀 서민들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
미국에는 존경 받는 부자인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있다. 버핏은 최근 정부가 재정적자로 인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하는 등 어려움을 겪자 먼저 자신을 비롯한 부자들에게 증세를 하라고 요구해 화제가 됐었고, 빌 게이츠와 함께 범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천문학적인 금액의 재산을 환원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 받는 부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지 대기업과 재벌 총수들이 진지하게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민들이 패가망신하고 나라가 망해도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자신들의 재산만 들고 해외로 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우리나라의 최고 부자요 최대 기업의 총수는 형과 누나와 재산다툼을 벌이면서 정화되지 않고 감정 섞인 수준 이하의 말을 쏟아내 인격의 그릇에 대해 아쉬움을 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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