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영은 기자] 민주, 출총제 부활·순환출자 금지·금산분리·부자 증세 '한목소리'
새누리, 이슈 선점했지만 강도 약해… '박근혜표 경제민주화' 최대 관심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사회 갈등과 분열이 심각해지면서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영세 자영업자, 재벌과 서민 간의 간극은 이제 그 어떤 것으로도 좁히기 어려울 정도로(넘사벽?) 크게 벌어졌다. 사실 양극화라고도 보기 어렵다. 1%대 99%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절대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과점해 고대의 황제처럼 군림하고 있고, 절대 다수는 절대 소수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도 없이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최근 공개한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1천명 대상)에서도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응답자가 무려 79%에 달했다. 경제민주화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서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19대 국회도 지난 5월 30일 임기가 개시되자마자 앞다투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다.
◇ 대선 앞둔 정치권 '경제민주화' 이슈 선점 각축
경제민주화가 '재벌죽이기'가 아니라 선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입장에서는 여야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만 경제민주화 해법을 놓고서는 여야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이와 관련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당 내에서조차도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표심도 표심이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자 핵폭탄급 위력을 가진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라고 하지만 사실상은 '재벌개혁'이다. 핵심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금융·산업자본 분리(금산분리) 강화, 부자증세다. 이 밖에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지원 행위를 통한 대기업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 방지 및 단가 후려치기나 발주취소 등 대기업 횡포 방지를 위한 중소기업 단체교섭권 부여, 재벌 총수일가의 횡령·배임 등 각종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강화, 경제범죄 총수의 경영권 제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보완 등도 거론되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재벌그룹에서 벌어지는 범죄 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 소유지배구조 개혁, 공정거래 원칙 확립이 재벌개혁의 3대 원칙”이라고 말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재벌개혁 정책과 관련해 ‘시장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대체적으로 유보 또는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재벌 총수 지배체제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부의 감시·감독 강화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시장의 문제에 대해서 최대한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그렇게 해서는 재벌의 탐욕을 막을 수 없어 양극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먼저 출총제와 관련, 민주당은 지난 2009년 폐지됐던 출총제를 부활해 10대 대기업의 출자 한도를 순자산의 30%까지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과거 출총제에서는 예외 적용을 받는 대기업의 신규 투자가 많아 실효성에 없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출총제 적용에 있어서 어떠한 예외도 두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출총제 부활이 대기업 규제에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집단 지배구조의 핵심인 순환출자와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3년간 유예기간을 준 뒤 해소하겠다는 강력한 안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에서는 이한구 원내대표 등을 중심으로 해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건드리는 것은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부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김종인과 쇄신파를 중심으로 순환출자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어 어떤 결론이 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산업자본 분리 강화를 놓고도 여야의 입장이 갈리고 있다. 민주당은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두는 것을 금지하고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지주회사 주식 보유한도도 9%에서 4%로 낮추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 개정안을 김기식 의원 등이 발의한 상태다.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일부에서 금산분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은 반대하고 있다.
증세와 관련해서 민주당은 최근 소득세 최고세율의 적용구간을 3억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부자 증세' 카드를 다시 한 번 꺼내든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누어 특정 계층을 겨냥해 세제를 개편하는 것에 반대하면서도 중도까지 끌어안을 수 있도록 현행 소득세 제도의 과표와 세율을 손보는 종합적인 소득세제 개편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와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500억 원 초과’ 과표 구간을 만들어 법인세 과세 구간을 2억원, 2억~500억원, 500억원 초과로 조정해 과표 500억원 초과 기업에 25%의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이익 상위 0.1%의 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통해 99.9%의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법인세 과세 구간을 2단계에서 3단계로 확대하고 세율을 높이는 것에 반대하면서 현행 세율을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또 민주당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에 속한 계열사 간 배당금 과세를 강화해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견제하는 법안도 내놓았다. 현행법에서는 배당소득을 익금불산입해 회사가 법인세와 배당소득세를 이중으로 내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대기업에 속한 기업들이 계열사에서 받은 배당금액에 대해 법인세를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비과세감면에 대해 원칙적으로 최저한세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과도한 조세감면 혜택을 보고 있는 대기업의 감세폭도 줄인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최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가 발표한 '재벌·대기업에 큰 혜택이 집중되는 현행 법인세제 개편 방향'에 따르면, 2010년 제조업 조세지원액은 총 8조4321억원으로, 이 가운데 10대 재벌기업과 대기업이 각각 59.1%와 84.3%를 차지했다.
특히 2010년 삼성전자의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은 15조293억원이지만 실제 낸 법인세는 1조7929억원에 불과해 이에 따른 실효법인세율은 11.9%였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의 실효 법인세율은 22.0%였다.
◇ 새누리당에선 경제민주화 놓고 격론
김종인 "이한구, 경제민주화 자꾸 왜곡… 재벌쪽 이해 대변"
이한구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뭔지 모르겠다"
한편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선 캠프에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과 원내사령탑인 이한구 원내대표가 가시돋친 설전을 벌이면서 대립각을 세우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의 근거가 되고 있는 헌법 119조 2항을 입안한 김 전 위원은 당내에서 경제민주화 강경파로 분류되고 있다. 반면 경제관료와 대우경제연구소장 출신인 이 원내대표는 온건파여서 둘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시각차가 상당히 큰 편이다.
김 전 위원은 심각해진 양극화가 재벌의 폐해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재벌개혁을 하지 않고서는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이 원내대표는 대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공정거래위의 감시기능 강화 등 행정적인 수단을 더 선호하고 있다. 결국 둘 가운데 누가 당내 경제민주화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새누리당의 재벌정책이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김 전 위원은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경제민주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했는데 그 자체는 별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한구 원내대표와 경선캠프를 총괄할 최경환 의원이 '경제민주화'를 놓고 자신과 논란을 벌인데 대해서는 "최 전 장관과 이 원내대표와도 상당한 괴리가 있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정치민주화를 이해하느냐고 묻고 싶다"고 선제공격을 날렸다.
특히 "이 원내대표는 재벌개혁에 오래 종사했기 때문에 그쪽의 이해를 대변해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면서 "정치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알면서 경제민주화를 자꾸 왜곡되게 이야기하고, 마치 시장경제 자체가 경제민주화라고 이야기를 하면 자본주의 발달, 시장경제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부족한 사람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원내대표는 김 전 위원을 향해 "일일이 답변하고 싶지도 않다. 답변할 만한 값어치가 있어야지..."라고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김 전 위원이 말하는 경제민주화 내용이 뭔지, (김 전 위원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경제민주화는 사회정치학자들이 쓰는 말이지 정통 경제학자들은 쓰지 않고, 경제학 주류인 영미 경제학자들도 그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각을 세웠다.
또 "학계 연구에 의하면 경제민주화는 공정 경제를 의미하는데 경제주체간 조화를 의미하는 기회의 공정, 공정한 부담, 공정한 거래, 불공정 경쟁 방지, 지역·계층간 불균형 해소 등 모든 것을 의미한다"며 "재벌과 관련된 것으로 국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재벌만을 겨냥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강경파인 김 전 위원장도 `경제민주화가 반드시 재벌해체·재벌개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어 민주당만큼의 개혁적인 정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는 "재벌을 규율로써 행동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어떻게 개혁하고 해체하겠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며 재벌해체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은 현재 대기업의 담합근절,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대기업 대주주의 횡포억제 등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쇄신파를 중심으로 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여러 차례 공청회를 개최해 의견 수렴에 열중하고 있고 조만간 관련 법안도 제출할 예정이다. 현재 이종훈 의원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민현주 의원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 발의를 각각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신규 순환출자 규제, 기업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규율 장치,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행위 등의 시정대책 실효성을 높여주는 장치에 대해서도 법안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장기화되고 있는 유럽발 경제위기로 국내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추진하는 재벌개혁이 기업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강도 높은 재벌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은 사실상 '박근혜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박 전 위원장의 영향력이 강력한 데다 박 전 위원장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강력한 재벌개혁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당한 수준의 재벌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박 전 위원장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현재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김 전 위원을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전격 영입, 경제민주화 이슈 선점에 성공한 상태다. 또 신뢰와 약속을 중요시하는 박 전 위원장이 여러 차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내비친 점도 기대를 높이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1월30일 라디오 정강정책 연설에서 "불공정 거래를 엄단하고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남용과 하도급 횡포를 엄단해 공정한 경쟁풍토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했었고,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는 "대주주가 탈법적인 사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은 금지돼야 한다"며 "대주주의 사익추구, 권한남용은 확실하게 막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박 전 위원장이 재벌의 경쟁력을 억제하지 않으면서 공정위를 중심으로 해 재벌의 폐해를 일체의 타협이나 뒷거래 없이 강력한 법집행으로 막는 방향으로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박 전 위원장 참모들에 따르면, 국민과 중소기업, 사회를 상대로 한 재벌의 비민주적·불공정 행태를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재벌의 독과점, 중소기업에 대한 하청가격 후려치기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재벌의 골목상권 침투 등에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위원장은 현재의 법과 원칙만 제대로 집행돼도 재벌 폐해는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재벌의 편법·불법 상속 및 세금 탈루,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 등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출총제 부활이나 순환출자 금지, 부자증세 등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나 증세에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서는 이 원내대표의 경제민주화 방향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실체는 대선 공약을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