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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결제 유도하고 현금영수증 회피한 `탈세부자' 59명 세무조사

[재경일보 이영진 기자] 서울 강남의 유명한 치과병원 원장인 A씨는 임플란트 등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들에게 수술비를 15% 깎아주는 대신 현금결제를 요구했다.

30만원 이상 현금거래 때는 현금영수증을 반드시 발행해야 하지만 전산자료를 삭제·변조하는 수법을 썼고 병원 인근 건물에 비밀사무실을 마련해 매출자료를 숨기고 별도 전산실에 전산서버를 보관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제도를 위반해 현금결제를 유도한 금액은 3년간 무려 304억원에 달했으며, 이중 195억원의 현금수입을 신고하지 않았다.

첩보를 입수한 국세청 조사공무원은 환자를 가장해 A씨의 탈루수법을 확인하고 비밀사무실을 찾아냈다.

A씨가 세무조사 사실을 확인하고 전산자료를 파기했지만 국세청은 전산장비를 어렵게 복구해 탈루사실을 입증했다.

A씨에게는 소득세 등 80억원이 추징되고 현금영수증 미발행금액에 대한 과태료(미발행액의 50%) 152억원이 부과됐다.

결국 현금거래로 챙긴 304억원 가운데 232억원을 토해내게 됐다.

게다가 A씨는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조치까지 당했다.

나이트클럽과 모텔을 운영하는 B씨는 나이트클럽의 현금수입을 친척 명의 차명계좌에 입금해 49억원을 신고누락했다. 모텔 수입은 객실 하나를 비밀창고로 활용해 숙박장부, 일일매출표 등 서류를 숨기는 수법으로 현금수입 3억원을 빼돌렸다.

국세청은 B씨의 탈루소득 144억원에 대해 79억원을 추징하고 고발했다.

성공보수 등 수임료를 친인척 이름의 차명계좌로 입금받아 7억원을 신고누락하고 현금결제 2억원을 현금영수증 발행 없이 챙긴 변호사 C씨는 소득세 5억원과 현금영수증 미발행 과태료 1억원을 통보받았다.

국세청이 이처럼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제도를 피해 소득을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는 의사, 변호사, 입시학원장, 유흥업소 업주 등 고소득자 59명에 대해 고강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30만원 이상 현금 거래를 하면서 할인을 미끼로 소비자에게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고 소득을 탈루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현금거래는 대표적인 세금회피 수단으로, 신용카드나 현금영수증은 국세청 추적의 단서가 되는 점을 의식해 고객의 현금거래를 유도했으며, 차명계좌와 비밀장부를 통해 `부끄러운 부(富)'를 관리했다.

국세청이 이들의 숨은 소득을 파악하기 위해 대표업종을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으로 지정하고 사업장마다 자동인식 전산장비를 마련했지만 사업자들이 차명계좌와 비밀사무실을 악용해 추적을 피한 탓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저가 수입농산물로 폐백·이바지 음식을 만들어 국산으로 속여 팔아 폭리를 취한 폐백·이바지업체, 악덕 사채업자 등 민생침해 사업자 114명도 조사한다.

강남에서 유명한 미국 수학능력시험(SAT) 전문어학원을 운영해온 학원사업자 D씨의 경우, 국내에서 미국대학 입학 준비생들을 상대로 소수정예 족집게 강의를 하고 과목당 월 150만원을 챙기는 등 학부모로부터 과도한 수강료를 받아 호화생활을 하면서도 48억원의 수입을 빼돌렸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방학(10일) 때 유학생을 상대로 특강을 해 400만원씩 받기도 했다.

이렇게 번 돈을 D씨는 직원과 배우자 명의 계좌로 관리하면서 골프회원권과 고급주택을 사들여 성공한 학원업자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국세청은 D씨에게 소득세 등 15억원을 추징하고 고발조치했다.

수십명의 여성 접객원을 고용해 룸살롱 영업을 하면서 원시자료를 파기하고 개인 USB에 매출기록을 보관해온 업주도 적발됐다. 이 업주는 현금 술값을 차명계좌로 넣고 봉사료를 허위계상하는 수법으로 60억원을 빼기도 했다.

국세청은 "이들 173명 본인은 물론 친인척 등 관련인의 탈세행위에 대해 금융거래 추적조사, 거래상대방 확인조사 등 엄정한 세무조사를 동시에 해 탈루소득을 끝까지 환수하겠다"고 26일 발표했다.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사업자는 검증해 탈루세금 추징과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위반 과태료(미발행 금액의 50%)를 부과할 예정이다.

탈세를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등 사기 등 부정 행위로 탈세한 사실이 확인되면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2010년 4월부터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성형외과, 학원, 예식장, 골프장 등을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 사업자로 지정하고 30만원 이상 현금거래 때 소비자의 요청이 없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반드시 발행토록 하는 제도를 운용해 왔지만,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조건으로 가격을 10~20% 할인하는 수법으로 현금결제를 유도해 세금을 탈루하는 사업자들이 적지 않다.

작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국세청이 적발된 현금영수증 미발행사업자는 148명이며 이들에게 과태료 287억원이 부과됐다.

세무조사를 받게 될 사업자는 성형외과와 협동진료형태로 고가 양악수술, 안면 윤곽수술을 하고 수입을 현찰로 받아 직원 명의 차명계좌로 관리한 치과, 아토피·비만 전문치료 의원으로 비보험수입을 친인척 계좌에 숨긴 한의원 등이다.

종업원 이름으로 여러 업체를 운영하며 술값을 현금으로 받은 유흥업소, 외국인 단체관광객을 유치해 현금 식대를 신고누락한 유명 음식점, 불법 기숙학원도 포함됐다.

민생침해사업자 가운데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 인테리어 비용·광고비를 과다 청구해 수익을 갈취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이름이 눈에 띈다.

국세청은 올해 상반기에만 고소득자영업자(339명)와 민생침해사업자(79명)를 조사해 탈루세금 2229억원, 1744억원 등 모두 3973억원을 부과했다.

김형환 국세청 조사2과장은 "음성적인 현금거래, 차명계좌 이용을 통해 고의로 소득을 축소신고한 고소득 자영업자와 불법 행위로 폭리를 취하면서 세금을 탈루한 민생침해 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앞으로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