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감사위원회 제도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10대 그룹 상장사들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했거나 선임할 예정인 감사위원 3명 중 1명은 전직 장관이나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내부 임직원이나 협력회사 관계자 출신도 다수였다.
이에 따라 감사위원회 위원들이 경영진에 대한 감시·감독이라는 본래의 역할보다는 구색 맞추기나 로비용으로 이용되는 구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사위원회는 3명 이상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돼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한 감시 역할을 맡는 내부 통제기구다.
18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기업집단 소속 80개 상장사 가운데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66개사는 올해 초 주주총회를 통해 총 81명의 감사위원을 선임했거나 뽑을 예정이다.
이들의 출신 직업별로 보면 교수가 35명(43.2%)으로 가장 많았고, 금융ㆍ재계(10명), 행정부 공무원(9명), 국세청(7명), 판사(5명), 계열사 임직원(4명), 검찰(3명), 경찰(1명), 언론인(1명), 협력회사 관계자(1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중 정부 고위 관료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사법당국 등 권력기관 출신이 25명으로, 전체의 30.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논란이 일었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을 감사위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송광수 전 총장은 검찰 재직 당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의혹 수사와 대선 비자금 수사의 최고책임자였다.
LG는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을 감사위원으로 재선임할 계획이며, 현대모비스 감사위원으로는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박찬욱 세무컨설팅 대표가 선임됐다.
SK텔레콤 감사위원에는 역시 서울지방국세청장 출신인 오대식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이 뽑혔다. SK C&C는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출신인 주순식 법무법인 율촌 고문을 감사위원으로 뽑는 안건을 올렸다. 주 고문은 작년까지 SK그룹 계열사인 하나SK카드의 사외이사를 역임했고, 지금은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을, 롯데제과는 강대형 전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을 감사위원으로 각각 선임할 예정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3년간 입항수속 등과 관련해 자사와 34억원 규모의 거래내역이 있는 협력회사 협운인터내셔널의 마상곤 회장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또 자산총액이 2조원에 미치지 않아 감사위원회 대신 상근 감사를 두고 있는 10대그룹 소속 14개 상장사에서는 새로 선임되는 감사 9명 중 8명이 정관계(5명)나 계열사 임직원(3명)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상법상 자산이 2조원 이상인 주식회사는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감사위원 3분의 2 이상은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감사위원회는 여러 명으로 구성되는 회의체 조직이어서 1명의 상근감사로 운영되는 감사제도보다 중립성과 독립성이 더 높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비상근 사외이사들이 회사 사정에 어둡고 회계·재무 등 감사에 필요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울러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기 힘든 내부 임직원이나 협력회사 관계자를 감사위원으로 앉히는 경우도 상당수인데다, 고위직 출신 인사를 영입해 경영 감시라는 본래 역할보다 대외 로비에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준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사위원은 이사회에서 선임·해임하므로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감사위원이 얼마나 객관적 시각을 갖고 기업 오너나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활동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회적책임투자(SRI) 컨설팅 회사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감사위원이나 감사는 대주주나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우리나라의 감사는 주로 로비 위주의 활동을 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류 대표는 "정상적으로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개별 기업에는 이익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가 경제 전반을 '이권 경제'로 변질시킨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금치산자나 실형을 확정받은 사람, 특정 기간 전까지 계열사 임직원으로 근무한 사람 등 최소한의 결격 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면 사외이사와 감사가 될 수 있는 것이 문제"라며 규정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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