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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승무원들 "살아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의 주장이다.

◇ "물 차오르기 전에 탈출하자"

지난달 16일 오전 8시 30분 세월호가 급변침 후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자 선장 이준석(69)씨와 기관장 박모(54)씨, 승무원 7명은 조타실로 모였다.

이들은 침수 한계선(배의 2층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는 사실을 알고 탈출을 결심했다. 침수 한계선을 넘으면 침수가 급격하게 진행돼 탈출이 어려워진다.

침수가 시작되면 대부분 여닫이 문인 선실의 문들이 수압으로 열리지 않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선장 이준석(69)씨는 사고 발생 전 10여분 간 침실에 갔다가 조타실로 복귀했다.

국내에서 물살이 두번째로 세다는 맹골수도 운항을 지휘해야 했지만 3등 항해사에게 맡기고 자리를 비웠다.

기관장 박씨도 기관실에 있는 기관부원에게 탈출을 지시하고 조타실을 떠났다.

오전 9시 6분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구조 요청을 하는 사이에 기관장 박씨와 기관부원 6명은 전용 통로를 이용, 3층 승무원실 앞 복도에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배가 50도 이상 기울었을 당시 기관부원들은 오전 9시 36분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구조정에 올라탔고 이어 오전 9시 48분 조타실에 있던 선장 등 승무원 8명도 경비정에 올라타고 탈출을 완료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서 상황을 물었지만 대답하는 승무원은 없었다.


구조정 도착을 잘 알 수 있는 조타실과 복도에서 기다리던 이들 승무원은 기운 선체에서 쉽게 빠져나가기 위해 소방호스까지 몸에 묶고 대기하고 있었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승무원실로 다시 돌아가 제복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여유까지 부렸다.

탈출하면서 바로 옆에는 구명벌이 놓여 있었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구조정을 타고 육지에 닿을 때까지 해경에게 구호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청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 구호 조치 없이 회사에 보고만…최소한의 안전 의식도 없어

승무원들은 사고를 감지하고 탈출하기까지 휴대전화로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6차례 통화했다.

1등 항해사 강모(42)씨는 선사와 5차례 통화했고, 선장 이씨도 35초간 통화하며 사고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선사에 보고하면서도 구호 조치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들은 매니저 강모(33)씨에게 "그 자리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내보내도록 지시하고 다른 조치 없이 배를 먼저 떠났다.

승무원들은 출항 전 인천항 운항관리실에 '배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요지의 안전 점검 보고서를 허위로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화물 적재, 구명장비, 평형수 상태가 모두 양호한 것으로 기재됐다.

짙은 안개로 사고 전날인 15일 오후 9시 출항했지만 실제와 다른 오후 6시 30분으로 기재됐다.

여객 명부도 첨부되지 않아 정확한 승선 인원조차 파악하기 힘든 상태였다.

승무원들은 안전 교육조차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 승객과 동료 승무원 "그대로 있어라" 지시만 믿고 기다려

선내에는 승무원들의 지시로 "그 자리에 대기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승객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구조만을 기다렸다.

오전 9시 38분 한 승객이 "해경이 왔다. 움직이면 안 된다. (언론에)속보 떴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승객들은 오전 10시 17분 배가 90도 이상 기울 때까지 그대로 머무르다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다.

승무원들은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정에 올라타고 탈출을 완료했다.

승무원들의 지시로 승객과 함께 배에 머무른 서비스직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구하려다가 대부분 숨지거나 실종됐다.

탑승한 승무원 33명 가운데 선박직원 8명을 포함한 주요 승무원 15명은 모두 생존했다. 서비스직 승무원 18명 중 8명만 구조됐고 6명은 숨졌으며 4명은 실종 상태다.

팬티 차림으로 먼저 탈출한 선장 이씨는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1등 기관사 손모(57)씨는 "먼저 탈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방송을 듣고 대기하다가 배가 침수되고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탈출했다"고 해명했다.

1등 항해사 신모(34)씨와 2등 항해사 김모(47)씨는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