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국세청장이 '그림 상납' 의혹이 불거진 12일 이후 사흘만인 15일 결국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김경수 국세청 대변인은 16일 "한상률 국세청장이 15일 오후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한 청장은 그동안 '그림 상납' 의혹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며 버티기를 시도했지만 '골프 로비' 의혹까지 터지면서 결국 자진사퇴의 길을 선택했다.
그림 상납 폭로에서 사의 표명까지를 되짚어 본다.
◇전군표 전 청장 부인 이모씨, "한 청장에게 그림 받았다" 폭로
'그림 상납'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 12일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 이씨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 청장으로부터 그림을 선불받았다고 폭로하면서부터다.
당시 이씨는 인터뷰에서 "남편이 국세청장으로 재임하던 2007년 초 한상률 당시 국세청 차장 부부와 시내 모처에서 만나 식사를 하며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 남편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한 차장의 부인이 내게 '좋은 그림이니 잘 간직해달라'며 '국세청 고위 간부 A씨를 좀 밀어내달라'는 인사청탁과 함께 그림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한상률 당시 차장이 전군표 청장에게 전달했다고 이씨가 주장한 그림은 최욱경(1940~1985) 화백의 작품(학동마을)이다. 최욱경 화백은 1980년대 대표적인 추상화가이며, '학동마을'은 2000만~3000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이 같은 주장에 더해 "그날 모임에 한 차장 부부가 이미 모종의 'A씨 사퇴압박 시나리오' 같은 걸 만들어서 갖고 왔다"고 말했다.
TK 출신의 A씨는 요직을 두루 거친 한상률 당시 차장과 라이벌 사이로 알려졌다.
◇한상률•전군표 "사실무근" 부인
이씨의 발언이 있은 직후 한 청장은 "완벽한 모함이며 전혀 사실무근이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국세청도 해명 자료를 내고 "전군표 청장 부부와 한상률 차장 부부 4명만이 만난 사실조차 전혀 없으므로, 4명이 있는 장소에서 인사청탁, 그림전달 운운 등 기사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 청장은 또 13일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 "전군표 전 청장을 만난 적도 그림을 본 적도 없다"며 "결국 근거 없는 사실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A씨를 밀어내 달라는 청탁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 총장은 "아는 사람은 당시 상황을 다 알 것"이라며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했다.
여기에 전군표 전 청장까지 13일 박영화 변호사를 통해 "한 청장한테 '학동마을'을 받았다는 아내 이씨의 발언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면서 이씨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영화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전 전 청장 본인은 부인의 발언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당황스럽고 화가난 상태"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전 전 청장은 그림을 본 일이 없으며 그림을 매각 외뢰한 사실조차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씨가 경거망동했다 뜻도 내비쳤다.
전군표 전 청장은 2006년 당시 정상곤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서 인사청탁 명목으로 현금 7000여만원과 1만 달러를 상납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골프 청탁설'까지...엎친데 덮친 격
진실게임으로 번진 '그림 로비' 의혹에 '골프 청탁설'까지 더해지면서 한 청장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지난해 말 경북 경주에서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있는 포항 지역 인사들과 골프를 치고 이후 대구에서 이 대통령의 동서인 신모씨와 만난 사실이 드러나 청와대로부터 '주의' 통보를 받은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이에 야당은 14일 "이명박 정부의 인사 실세와 밀실인사 실체가 드러났다"면서 즉각 공세를 취하며 한 청장을 궁지로 몰아 넣었다.
한 청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골프는 쳤지만 누구와 쳤는지는 밝히고 싶지 않다"며 "서씨와 인사는 했지만 그가 대통령의 동서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고 말해 인사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미 여론은 악화된 뒤였고 여권과 청와대 일각에서도 한 청장이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청장, 버티기 실패...결국 사퇴
한 청장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 처음에는 자진사퇴할 뜻이 없다며 버티기를 시도했다.
13일 기자회견에서 한 청장은 "사임은 하고 싶다고 하는게 아니라 인사권자의 권한"이라며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한 청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언론에서는 한 청장의 자진사퇴설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들은 15일 "한 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긴급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와 한 청장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긴급브리핑을 열고 "이 시간, 현재 시점에서 한 청장으로부터 사의 표명을 받은 바 없다"고 잘라 말했고 한 청장 본인 역시 대변인을 통해 "사의를 표명한 사실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며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흔들림 없이 국세 행정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청장의 버티기는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한 청장은 결국 15일 오후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고 청와대 측은 즉시 후임자 물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에는 허병익 국세청 차장,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 허용석 관세청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