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취임에 맞춰 세계 지도자들은 일제히 축하인사를 건네면서 대화를 중시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다자주의' 정책에 기대감을 피력했다.
세계 지도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후변화 대응과 인권 개선 등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이 '타협'을 거부했던 현안들에 좀 더 많이 노력해주기를 주문했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이란, 미국에 맞설 '슈퍼파워'로 재부상하려는 러시아,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 등은 축하와 함께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獨.佛.英 등 전통 우방의 축하와 당부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일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이 "미국에 진정으로 위대한 순간"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적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을 희망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독일 공영방송 ARD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 각국의 동맹국들과 협의ㆍ협력하고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노선을 일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협력이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세계의 어떤 문제도 특정한 한 국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결정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라며 "이런 정신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양국 간 협력 제고를 기대하는 분야로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란 핵개발과 대(對) 러시아 관계를 꼽으면서 그러나 미국이 요구하는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에 대해서는 단호한 거부 입장을 고수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 구제와 관련, 메르켈 총리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것으로 장기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행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데 앞장서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과 적극 협력할 용의가 있다"라고 밝혔다.
취임 이래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강조해 온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와 같은 언급은 글로벌 경제위기는 물론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란 핵 문제, 기후변화 대응 등 국제 현안 해결을 위해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교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을 전 세계와 함께 축하한다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쿠슈네르 장관은 이날 프랑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과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라며 "그는 '요술 지팡이'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한 뒤 도전에 맞설 '새로운 세계 통치방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바로수 위원장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은 국가 간 구분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며 "(여기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 통치방식이자 번영을 위한 새로운 토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및 그의 행정부와 협력해 기후변화 대응, 국제 원조와 무역, 민주주의, 인권 및 건전한 금융시스템의 발전 등의 부문에서 미국과 유럽이 맡은 바 책임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유럽연합(EU) 이사회 순번의장국인 체코도 2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관련, 협력을 통한 대서양 양안 관계의 강화를 강조했다.
체코 정부는 의장국 성명을 통해 "최근의 역사가 보여주듯 대서양 양안의 주민이 요구하고 희망하는 바에 '대답'하는 데 최선의 방법은 함께 행동하는 것"이라고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계를 대표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평화를 증진하고 기아와 빈곤에 맞서 싸울 것을 주문했다.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축전에서 취임을 축하한 뒤 이처럼 당부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국가 간 이해와 협력, 평화를 증진하기를 기도한다"라고 덧붙였다고 이탈리아 뉴스통신 ANSA가 전했다.
교황은 이와 함께 "미국민은 자신들의 소중한 종교적, 정신적 유산으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윤리적 원칙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을 희망한다"라고 당부했다.
◇중동.중남미서 축하와 주문 교차 =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오바마가 흑인 최초로 대통령에 취임한 20일은 미국 역사상 '위대한 날'이라고 평가하면서 "오바마가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인류와 국가, 인종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레스 대통령은 또 "위대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테러에 맞서 싸우며 환경을 개선하고 젊은 세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충고했다.
미국과 캐나다도 회원국으로 두고 있지만 주로 중남미 국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미주기구(OAS)는 호세 미겔 인술사 사무총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와 중남미 국가들이 더 많이 대화해 현안들에 합의점을 찾도록 노력하자고 주문했다.
인술사 사무총장은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여행 자유화와 송금 허용 입장을 언급한 바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962년 이래 계속돼온, 쿠바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것을 기대한다"라고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칠레 중도좌파 정치인 출신의 인술사 사무총장은 또 성명에서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곧 풀릴 것으로 기대하며 쿠바의 OAS 복귀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관타나모수용소 폐쇄까지 이뤄질 때 쿠바의 민주적 개방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中.러.이란은 오바마에 '뼈 있는' 한 마디 =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미 관계는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를 개척하려는 아주 중요한 단계에 있다"면서 오바마 행정부와의 협력을 약속했다.
장 대변인은 "양국 관계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것은 양국 인민들의 기본적인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세계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두 나라는 상호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고 운을 뗀 뒤 "미국은 3개 항의 중-미 공동성명의 원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대만에 대한 무기수출을 중단하는 한편 대만과의 군사훈련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미국은 신중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대만 문제를 처리함으로써 중-대만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실질적인 행동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오바마 행정부는 이전 부시 행정부가 견지했던 '이념적 잣대'가 아닌, 실용주의를 토대로 미사일방어(MD) 계획,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 등 양국 관계에 논란이 된 문제들을 해결하기를 바란다"라고 양자 관계의 핵심 의제를 적시했다.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으로 규정됐던 이란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맞아 외무부 성명을 통해 "오바마 당선인이 이란에 대해 올바른 길을 선택하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마누체르 모타키 외무장관은 "오바마가 적대감과 미국의 주도권을 버리는 방향으로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 역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소 유화적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