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은행 국유화 논란이 한창이다. 부실한 은행에 자금을 투입해도 금융불안이 누그러들지 않자 아예 정부가 은행의 주인으로 들어와서 불안감을 잠재워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산업이 정부의 지배권 밑에 놓이게 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도 만만치않기 때문에 국유화에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국유화가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고 그 절차와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정부와 씨티은행이 정부 보유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중인 것을 계기로 국유화 논란이 촉발됐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미 금융회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데다 임원보수 제한도 받는 등 사실상 월가가 워싱턴의 영향력하에 놓여있는 상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유화라는 용어는 정부가 민간기업을 인수해 소유권을 갖는 것을 뜻한다.
미국에서 쓰이는 은행 국유화는 정부가 위기에 내몰린 은행의 회생을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상당한 지분을 매입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금융회사의 자산.부채를 동결하고 압류하는 것을 지칭할 때도 있다.
이 경우 미국에서는 예금보험공사(FDIC)가 경영진을 교체하고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일부에선 미국 정부가 은행에 자금을 투입하면서 지분을 받았으므로 이미 국유화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정확히 말하면 아직 국유화된 것은 아니다.
미 정부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웰스파고로부터 받은 주식은 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에 우선권을 갖는 우선주다.
당시 정부는 은행에 자금을 지원해주면서도 '관치'논란을 피하기 위해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받았다. 동시에 이는 배당에 중점을 둬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데 주안점을 둔 방식이었다.
이 우선주가 일정 조건에 따라 보통주로 전환돼야만 정부가 대부분 단일 최대주주의 지위에 등극,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정부의 지분율이 반드시 50% 이상을 넘어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민간 금융부문에 대한 정부 지배권 행사에 대한 우려를 의식해 최대한 지분율을 낮게 가져갈 공산이 크다. 경영진 교체 등을 비롯한 경영상 주요 결정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단일 최대주주 수준의 지분율이면 충분하다.
이때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낮아질 수 있고 감자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으므로 기존 주주들은 '주주 책임'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뉴욕증시에서 국유화 논란의 대상인 은행의 주가가 폭락한 것도 주주들의 보유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신 국유화 이후엔 최소한 해당 은행이 망할 걱정은 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금융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금융불안의 '망령'을 잠재우는데는 다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유화에 찬성하는 쪽에서도 정부가 감원, 사업부문 매각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수익성을 회복한 뒤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민간에 다시 매각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과거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부실업체에 공적자금을 투입했다가 구조조정후 주가가 오르면 다시 지분을 매각하고 손을 떼려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