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내전이 격화하면서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선별적 공습을 승인한 사실이 알려지자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현장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 기업들이 진출한 현장은 모두 내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다 내전이 시작된 올해 6월 이미 외교통상부와 함께
위험상황에 따른 위기 대응 매뉴얼도 마련한 상태여서 내전격화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라크 사태가 장기화하면 이라크에서 건설·플랜트 등의 추가 수주가 어렵고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석유·정유 업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현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파급효과를 따지고 있다.
◇ 건설인력 900여명 이라크 체류…"피해 없도록 매뉴얼 따를 것"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에서 공사를 진행 중인 업체는 20여개사로 총 40건, 242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는 이라크 내전이 시작된 6월 하순부터 인력 철수를 시작, 현재 30% 정도를 감축해 현재 이라크에는 총 1천여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건설 인력은 930여명에 달한다.
이라크 남부에 있는 비스마야에 신도시 건설 공사를 진행 중인 한화건설은 현지와 본사에 설치된 상황실에서 현장 상황을 수시로 파악하고 위험도에 따른 대응방안을 마련한 상태다.
한화건설에 따르면 비스마야를 비롯한 이라크에 파견된 한화건설과 협력사의 직원은 모두 500여명으로 현재는 100여명이 휴가를 떠나 400여명이 현지에 체류 중이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현장과 수시로 연락하며 상황을 점검하고 있지만 특별한 변화는 없다"며 "공습이 예상되는 곳은 이라크 북서쪽의 반군 장악 지역인데 우리 현장과는 한참 떨어져 있어 큰 위협은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화건설은 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보안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이라크 내전이 시작된 6월 이라크 진출 업체들로부터 업체별 체류인원과 비상시 철수계획 등을 보고받고 매뉴얼을 만든 바 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현재 정부와 긴밀히 정보를 주고받는 상태"라며 "현지 상황이 급변하면 매뉴얼에 따라 대피, 철수계획 등을 단계별로 진행해 우리 직원·국민의 피해가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라크 내전 발발 이후 지금까지 비스마야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일은 없었으며 차근차근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남동쪽에 있는 바스라와 바드라 지역에서 가스분리 플랜트 공사 등을 수행 중인 삼성엔지니어링[028050]도 현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현재 이라크 현장에 본사 직원 91명을 포함, 협력사 직원 등 모두 197명을 체류시키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내전 지역과 우리 현장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며 "현장으로부터 아직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역시 이미 위험단계별 안전대책과 대피계획 등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정부와 현장과 긴밀히 정보를 공유하며 현장 상황에 따라 매뉴얼 대로 철수 등 조치를 신속히 취할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이라크 남쪽 알포지역의 항만공사를 진행 중인 대우건설[047040]은 지리적으로 남쪽에 떨어져 있어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카르발라 정유공장을 수주한 현대건설[000720]은 아직 공사 시작 전이어서 현지에 파견한 인력이 없다.
건설업계는 이라크 사태가 장기화하면 공사도 장기화하고 피해도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섣부른 인력 철수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라크는 처음부터 리스크를 감안하고 공사를 수주한 만큼 발주처 협의 없이 인력을 빼긴 어렵다"며 "외교부 등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건협 관계자는 "이라크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추가 공사 발주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우리 건설사의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 가스·석유공사 "충분히 대비해 큰 영향 없을 것"
이라크에 진출한 가스공사와 석유공사 등 공기업들도 내전 발발 당시부터 안전대책을 세워둔 상태다.
이라크에 유전 2개, 가스전 2개 등 모두 4개의 사업장을 두는 한국가스공사[036460]는 이미 올해 6월 현지에서 근무하던 6명의 한국인 직원 전원을 두바이에 있는 이라크법인 사무소로 철수시켰다.
이라크 반군 지역과 근접한 사업장은 이라크 서부 쪽에 있는 아카스 가스전으로 아직 개발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아카스 가스전은 부지만 확보해 놓은 상황으로 당장 큰 피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나머지 사업장은 교전 지역과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바스라 남서쪽의 주바이르 유전, 바그다드 동쪽의 바드라 유전, 바그다드 북동쪽의 만수리야 가스전은 현지인에 의해 관리·생산되고 있다고 가스공사는 밝혔다.
한국석유공사는 이라크 내 하울러·상가우사우스 등 유전 광구 2곳에서 조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 곳 모두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분류되는 쿠르드 자치구 지역 안에 있다.
사업 일정에 따르면 상가우사우스 유전은 올해 말까지 광구에 대한 탐사시추 작업이 진행되고 하울러 유전은 탐사를 모두 마치고 상업성을 인정받아 2016년 상업생산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도 석유공사는 쿠르드 자치구 안에 있는 에르빌과 바지안 등 지역에서 변전소 및 발전소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현지 사무소와 광구에 공사 인력 4명이 체류 중"이라며 "상황이 급변하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교전 지역이 아닌 곳에 사업장이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 정유업계 "원유가격 상승·석화 정제마진 감소 우려돼"
국내 정유업체들도 이라크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이라크에서 전체 원유 수입량의 20%(월간 400만∼500만 배럴)를 충당해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였다.
이 업체는 이라크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2번째로 규모가 큰 원유 도입처라고 밝혔다.
단 이라크 최남단인 바스라시에 있는 GS칼텍스 송유관은 아직 피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GS칼텍스는 이라크산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산유국으로 도입처를 변경할 예정이다.
비상시에는 중개시장도 이용할 수 있어 수급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가격 상승 부담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업체들은 이라크산 도입 비중이 미미하지만 단기적인 급등은 결국 급락으로 이어져 경영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또 이번처럼 돌발 변수로 원유가가 급등하면 최종 제품인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원가 상승 요인을 따라가지 못해 업체의 정제마진이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라크 정세 악화로 국제 유가도 상승할 전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라크 사태가 이미 장기화했고, 관련 리스크가 유가에 반영됐기 때문에 상승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라크의 원유 생산량은 글로벌 생산량의 약 3%로 과거 1·2차 이라크 전쟁 때보다 비중이 줄었고, 미국의 원유 재고도 충분해 전반적으로 원유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정유업계는 휘발유 수요가 감소하는 9∼10월 정제시설 유지·보수를 실시하기 때문에 앞으로 2∼3개월간은 원유 수요도 지속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