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27일(현지시각) 재정위기에 직면해 있는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국가신용등급을 대폭 하향조정했다. S&P는 이날 성명에서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3단계 하향조정, 정크본드(투자부적격 채권) 등급인 ‘BB+’로 강등했다고 밝혔다. S&P는 포르투갈의 경우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2단계 강등시켰다.
이 같은 유럽발 재정위기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이에 미국 다우지수는 11000선이 무너지는 등 미국과 유럽 증시 역시 급락했다. 이날 다우지수는 213.04포인트(1.9%) 급락한 10991.99로 장을 마쳤다. 나스닥지수도 전날대비 51.48포인트(2.04%) 하락한 2471.47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두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와 유로화(貨)를 함께 쓰는 ‘유로존’의 전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국채 투매를 주도하는 세력이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를 노리고 있다”며 남유럽 사태의 전염 가능성을 시사했다.
게다가 유로화에 묶여 있음으로써 해당국의 재정·무역 적자가 가중되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국내 경제 펀더멘털이 악화되면 해당국의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출 경쟁력이 향상된다. 하지만 유로화라는 공동통화로 묶여 있는 유로존에서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없다.
이날 그리스가 정크본드 수준으로 국가 신용등급이 추락한 뒤 곧바로 포르투갈의 국가 신용등급이 2단계 추락하면서 포르투갈이 ‘제2의 그리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는 국제 투기세력의 모함이라며 펄펄 뛰지만 ‘연쇄 도미노’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그리스보다 더 많은 부채 부담을 안고 있으며 10년 평균 성장률도 그리스에 뒤지는 포르투갈이 그리스에 이어 국채 위기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전망이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자생력이 크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재정 적자를 줄이려면 세입을 확대하거나, 세출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이 약하고, 세율 인상이 경기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진퇴양난이다. 세출을 줄이는 것도 어렵다. 그리스에서 빈발하고 있는 시위에서 볼 수 있듯 세출 축소는 구성원 간에 사회적 갈등을 크게 한다.
미국을 방문 중인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회원국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날 트리셰 총재는 ‘시카고 세계문제위원회’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이미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디폴트는 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그리스가 향후 3주 내에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채무 이행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트리셰 총재는 이어 “각국 정부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지속가능한 정책은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번 위기가 유로존 확대 계획에 영향을 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는 “가입 기준이 변하지 않았다”며 “가입 희망국들에 이런 점을 명확하게 주지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